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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새해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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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새해가 불안하다

입력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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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다짐을 나눌 때다. 그러나 유난히 암울한 연말 분위기에 겉치레 덕담조차 내키지 않는다. 지난 해 이맘때, 유례없이 열렬한 애국적 기운을 떨친 월드컵의 감동을 자산으로 스스로 주인 행세하는 나라 되기를 기원한 것은 역시 부질없는 짓이었다. 정의롭고 자주적인 선택으로 국운을 치켜세우기는커녕, 저마다 이기와 위선과 굴종으로 타락하는 길을 허위허위 달려온 느낌이다. 앞날의 비전을 찾기보다 지난 날을 돌이켜 반성하는 것이 급박하다고 보는 연유다.바깥 환경부터 열악한 해였다. 세계는 전쟁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분열돼 편가르기 양상이 전개됐고, 견실한 줏대 없는 사회는 한때 벗어났다고 착각한 약소국 정서, 변방의식의 낡은 틀 속으로 이내 도피했다. 민족자주를 누구보다 소리 높여 외치던 대통령부터 그 것이 선거구호에 지나지 않았음을 스스로 입증했고, 힘 센 나라를 추종하는 데 이골이 난 사회는 전통의 친미보수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한미동맹과 국익을 명분으로 전쟁과 파병을 지지하는 것을 오로지 평화와 자주의 이상을 잣대로 매도할 것은 아니다. 대외적 자주를 포기한 정부가 진보적 이념을 표방한 개혁에 충실할 수 없고, 그 결과 사회적 힘의 균형이 보수로 기우는 것을 조장한 것이 문제다. 정부는 보수세력의 훼방을 늘 불평하지만, 스스로 대의명분을 저버리고 우왕좌왕하다가 지지계층의 이반(離反)까지 자초한 마당에 누굴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지리멸렬한 현실을 모두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것도 기만적이다. 집권세력이 처절한 반성없이 정치권 비리추궁과 총선 승부로 개혁의 발판을 만들려는 것은 허망한 노릇이다. 하지만 사회가 저마다 이기적 탐욕과 기회주의적 선택에 몰두하면서 나라가 반듯하기 바라는 것은 한층 우습다.

경제 개혁과 노사 갈등, 부안 사태, 부동산 투기, 이라크 파병 등 모든 문제에서 겉으로 공익을 내세우며 속으로는 제 이익과 안일을 좇아 의식과 현실에서 편을 짜는 행태가 어느 때보다 널리 퍼졌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진보성과 무능을 동시에 비난하는 것은 파렴치를 넘어 반사회적 범죄수준에 이른 느낌이다. 계층간 갈등이 깊어지고, 부의 극단적 편중이 선진국 진입마저 막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은 그 폐해의 단면이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지난 정부에서 DJ 햇볕정책을 찬양하는 등 짐짓 진보적인 듯 행세하던 이들이 반노(反盧)정서나 우국충정의 허울아래 은연중 보수와 친미쪽에 손드는 행태다. 재임 중 부시에게 뺨을 맞은 DJ가 퇴임 후 불법대북지원을 추궁당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에 한껏 엎드리는 모습에서 뭘 느꼈는지 모르나, 결국 민족이나 이념 따위보다 대세와 이기와 지역을 좇는 처신이 이 땅에서는 불변의 금과옥조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이대로 가는 것이 항상 국익에 도움된다면 시비할 바 없겠다. 무작정 반미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서유럽이 늘 미국적 가치와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이에 실패한 중남미가 나락으로 떨어진 근본은 헤아려야 한다. 우리 안팎의 가치관과 행태가 어떻게 얽혀 미궁같은 혼란을 초래하는지 천착해야 한다.

고인이 된 미 상원의원 풀브라이트가 지적했듯이 제국의 힘과 세계를 이끌려는 소명에 겨운 미국이 새해 우리에게 다시 어떤 선택을 강요할지 점치기 어렵다. 신보수주의의 야심과 기력이 이라크 경략으로 일단 소진됐다는 지적이지만, 미국과 우리가 모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는 낙관할 수 없다. 다음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되던 이란이 대지진 재앙으로 자연스레 표적에서 벗어난 결과, 북한 문제가 다시 심각한 위기로 떠 오를 수 있다. 이 위기는 한미동맹이나 국익조차 고려할 여유없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좌우할 수 있다. 넓어진 북한관광 길에 서둘러 오르는 지식인들부터 민족의 운명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바란다.

강 병 태 논설위원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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