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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말과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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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말과 행동

입력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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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비즈니스 사이클'이라는 이론이 있다. 정치인들이 유권자들에게 아부를 하기 때문에 선거 때가 되면 소득분배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경기가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선거의 긍정적인 기능이라고나 할까.연말과 총선의 해가 다가오면서 한국정치에도 선거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즉, 노무현정부가 이탈한 개혁세력의 지지를 다시 모으기 위해 해가 가기 전에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문제들을 풀고 가려는 전향적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오기를 부리던 부안사태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했고, 정부가 약속을 깨고 강행하려 했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표명하고 나섰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나타나고 있는 또 다른 현상은 노 대통령과 민주당 간의 경쟁이다.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돕는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문제 발언도 그 같은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다. 특히 그 같은 경쟁은 김대중 전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경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은 김대중정부 시절의 핵심 인물들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김 전대통령의 적자임을 입증하려 노력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김 전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부쩍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노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전직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주력하지 않았고 김 전대통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 수용으로 김 전대통령과의 관계가 불편했던 것은 사실인 바, 최근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세계인권선언 55주년 기념식에서 행한 발언이 대표적인 예다.

즉, 노 대통령은 김 전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드실 때 나도 (인권신장이) 어지간히 됐는데 왜 만드는가 생각했는데 지금에야 그 깊은 뜻을 정말 이해하게 됐다" "정치인이 아닌 철학을 가진 지도자" "우리가 그런 지도자를 가졌던 데 대해 참으로 기쁜 마음이고, 정말 자랑스럽다"며 한마디로, 최고의 찬사를 보낸 것이다.

사실 김대중정부의 인권정책은 문제가 많았고 국가인권위의 경우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 받지 못하고 권한이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국가인권위는 인권을 경시해온 한국정치에 있어서 중요한 업적이다. 이 점에서 김 전대통령에 대한 노 대통령의 찬사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국가인권위가 그처럼 중요한 업적이라면 왜 노 대통령이 주요 사안마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무시해 왔느냐는 것이다. 예컨대 NEIS에 대해 국가인권위가 인권침해 결정을 내렸을 때 정부가 약속대로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받아들였으면 국론분열과 국력낭비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내가 인권변호사 출신인데 인권을 모르겠냐"며 국가인권위 결정을 무시해버렸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의 인권침해 우려와 위헌 가능성 주장에도 불구하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개악을 추진하고 있고 테러방지법을 제정하려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인권문제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정부가 시장과의 싸움에서 항상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해를 당부했다.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사안의 경우 정부가 노력하지만 시장에 져서 인권을 못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전혀 상관없이 정부 스스로 인권을 침해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이 김 전대통령에 대해 표명한 존경심이 단순한 선거용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말로만 존경을 표할 것이 아니라 인권위의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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