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시베리아 출신의 그리고리 라스푸틴은 본디 읽기와 쓰기도 배우지 못한 무지렁이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정교회 수도사가 되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에게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있었다. 아니,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그는 수도원과 성지를 돌아다니며 예언을 하고 환자를 치료했다. 물론 그는 의학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가 기도를 하고 환자의 몸 여기저기를 어루만지면 놀랍게 병이 나았다. 사람들은 그를 성자라고 불렀고, 이런 평판 덕분에 그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궁중에까지 출입하게 되었다.라스푸틴은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를 기도로 치료한 덕에 황제와 황후의 총애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었다. 최고 권력자의 절대적 신임을 얻게 되자 그는 분수를 잊고 러시아의 내정과 외교를 제멋대로 주물렀다. 게다가 그는 진료를 구실로 환자들과 곧잘 황음에 빠지곤 했고, 그럼으로써 러시아어 사전에 '난봉꾼'을 의미하는 '라스푸트니'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측근 정치를 주도한 승려로서 음란방탕을 일삼았다는 점에서 그는 고려 공민왕 때의 신돈(辛旽)을 연상시키지만, 신돈에게 있었던 정치적 이상주의가 라스푸틴에게는 없었다.
황후 알렉산드라에 대한 라스푸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어서, 그 문제가 두마(국회)에서까지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라스푸틴과 독일 공주 출신이었던 알렉산드라 주변에는 친독파 관료들이 들끓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져 러시아와 독일이 적국이 되자 몇몇 정치인이 황제에게 라스푸틴을 버리라고 충고했지만, 이들은 되려 황후의 미움만 샀을 뿐이다. 마침내 극우파 국회의원 푸리슈케비치를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은 황제의 눈을 가리는 이 요승을 직접 제거하기로 하고 1916년 12월30일 이를 실행했다. 암살됐을 때 라스푸틴의 나이는 44세였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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