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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5% 성장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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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5% 성장이라도

입력
2003.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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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사다난했던 2003년도 막바지이다. 한국 경제에는 나쁜 뉴스가 너무 많았다. 신용불량자 급증, 노사관계 악화, 기업 투자 부진, 청년 실업 등 일년 내내 우울한 소식이 이어졌다. 경기 침체 속에 경제 성장률은 2%대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 유가가 급등했던 1980년과 외환위기 직후의 1998년을 제외하면 6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서 수출이 잘 되어 제 자리 걸음은 한 것이다.경제가 엉망이지만 누구도 책임지는 말 한 마디 하는 것을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가계, 기업, 노조, 농민 등 모든 경제 주체가 항상 자기가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면서 갈등이 증폭되었다. 정부는 조정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투자 부진, 실업 증가, 금융 시장의 불안정에 대한 대응이 미흡하였다. 유일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부동산 가격안정도 결국 국민감정을 의식하여 단기 규제책으로 사태를 수습한 것이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단기 경기대응정책의 실패야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미 지난 것이다. 더 큰 걱정은 이러다가 우리 경제가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상실하고 추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참여정부가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 '동북아 중심국가'의 장기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신성장 정책, 동북아 금융허브 등의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제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정말 있는지 의문이고, 리더십이 없는 정부가 무엇을 실제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지난 대선 때 내세운 잠재성장률 7%의 장밋빛 공약까지는 아니라도 경쟁국들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또 장기적으로는 미래의 통일을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5%대의 성장이라도 지속적으로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6월 칠레에서 만난 전직 장관은 한국을 칠레가 본받을 경제발전 모델로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아니라면서 대안을 찾고 있다고 하였다. 격렬한 노사대립이 이어지고 북핵 위기, 대기업의 불법 비자금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시점이어서 방송에서도 한국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았다. 구조조정의 추진력은 상실하였고 정부의 리더십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금 한국 경제의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다고 열심히 변명은 하였지만 내심 불안했다.

6개월이 더 지난 지금은 걱정이 더 크다. 우리 경제의 모델이었던 일본 경제가 10년 장기 침체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우리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남미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이해집단에 휘둘리고 선거 때만 되면 '표'가 되는 정책이면 무엇이든 남발하는 '포퓰리즘'이 가져 온 경제 불안정과 그로 인한 성장잠재력의 저하였다. 그동안 한국 경제는 이 점에서는 남미 국가들과는 달랐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적으로 경제 정책을 해나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한 지도자의 리더십과 우수한 경제 관료들의 역할이 컸다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고 고도 성장이 계속된 덕분에 자기 몫을 챙겨가려는 이해집단의 압력으로 인한 피해가 별로 크지 않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통령과 모든 정당들이 정치 패권을 목표로 이전투구하는 상황에서 앞으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2004년에는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인기 영합의 단기 대책들을 남발하면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클 수도 있다.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규제 철폐, 시장의 투명성 제고, 경쟁 촉진, 적극적인 해외투자 유치, 연구 개발 투자의 활성화 등의 정책들을 과감하게 추진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종 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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