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전국의 국립박물관에서는 불교미술전이 많았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불화전 '영혼의 여정', 16일 개막한 '서역미술전'을 비롯해 춘천의 '나한전', 청주의 '불교동자승' 전, 20일 개막한 경주의 '일본의 불교미술' 전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경주의 '일본의 불교미술전'은 그 내용과 수준에서 발군의 충실함을 자랑하며 서울의 '서역미술전'과 나란히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일본의 불교미술전'은 한 마디로 명품의 향연이다. 고대부터 중세 초기까지 일본의 불교조각, 회화, 공예, 경전과 고문서, 고고유물 83점을 선보이고 있는데, 일본 국보만 9점, 중요문화재(보물)가 25점이나 들어있다. 일본 안에서도 나라(奈良)국립박물관 밖으로 나온 예가 거의 없는 8세기 두루마리 그림 '회인과경'(繪因果經)처럼 귀한 유물과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들이 전시돼 전문가들조차 파격적 컬렉션에 놀라움을 표시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접할 기회도, 연구자도 거의 없는 일본 불교미술을 국내 처음으로 집중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품은 일본의 3대 국립박물관 중 하나인 나라국립박물관이 보내온 것들로 한국·중국과는 다른 일본 불교미술의 고유한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백제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 아스카(飛鳥·6세기 중반∼710년)시대에서 가마쿠라(鎌倉·12세기 말∼1333년)시대까지의 일본 불교미술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그 뒤 일본에서는 불교가 쇠락함에 따라 불교미술도 후퇴했다.
이번 전시는 일본 불교미술이 한국의 모방일 것이란 짐작과는 달리 외래문화를 일찌감치 소화해 온 일본문화의 저력을 깨닫게 한다. 개막일 특강에서 와시쓰카 히로미쓰(驚塚泰光) 나라국립박물관장은 "일본의 불교미술은 초기에는 한국과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7세기 중반 이후 일본화한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일 양국의 불상 조각은 금동불로 출발하지만, 이후 우리는 석불을 많이 만들고, 일본은 나무 불상이 주류를 이루며 갈라진다. 특히 전시품 중 일본 국보인 9세기의 목조 '약사여래좌상'은 일본적 불상의 전형을 확립한 걸작으로 꼽힌다. 헤이안(平安·794년∼12세기 말) 시대의 귀족적 취향이 드러나는 이 부드럽고 우아한 불상은 우리나라 불상보다 볼에 살이 더 붙어 얼굴이 둥글넙적하고 턱이 짧으며 양쪽 가슴을 풀어헤친 채 늘어진 뱃살까지 보여주고 있어 양국 미의식의 차이를 느끼게 한다.
무사계급이 지배한 가마쿠라 시대의 강건하고 사실적인 기풍을 보여주는 조각 중 알몸의 '아미타여래 입상', 일본 산악신앙의 산물인 '장왕권현입상'(藏王權現立像)은 우리나라 불교조각에선 볼 수 없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양계만다라' '애염명왕좌상' 등 밀교 불화, 금강령·금강저 등 밀교 법구 공예품도 우리와 달리 밀교가 발달한 일본 불교미술의 고유한 특성을 보여준다.
한편 나라의 대찰 도다이지(東大寺)의 장원 영역을 표시한 8세기 그림지도 '동대사개전도'(東大寺開田圖)나 같은 시기의 아름다운 사경(寫經)은 부럽다 못해 심술마저 느끼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지도와 사경 제작은 그보다 훨씬 오래 됐지만, 사경은 11세기 이후 고려 사경이 대부분이고, 지도는 조선시대의 것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숱한 전란 탓에 많은 유물이 사라져버렸음을 감안해도, 일본이 1200년 전의 이들 고문헌을 온전히 지켜온 것은 감탄스럽다.
전시회는 새해 2월1일까지 계속된다. (054)740―7538
/경주=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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