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수업을 마치고 저녁 어스름에 귀가한 큰 아이가 텔레비전에 눈을 박고 있다."잠깐 동안이라도 오늘 배운 것 복습 좀 하지 그래? 그래야 오래 기억되는 거야."
"아빠도 참. 학교랑 학원에서 공부 많이 했는데요!"
하긴 너도 힘들겠다 싶어서 말을 보태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이게 아니다 싶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나는 학교 공부를 마친 뒤 서당엘 갔다. 석 달에 쌀 한 말인가를 바치고서 받은 사교육이었다. 서당의 교재는 천자문, 사자소학, 동몽선습 등으로 이어졌고, 훈장님을 따라 "아비 부, 날 생, 나 아, 몸 신…" 큰소리로 반복해서 읽는 것이 서당식 학습법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무작정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작은 책 한 권이 모조리 외워지고 내용도 훤해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려운 한문 책 한 권을 떼었다는 희열과 자신감은 어디서도 맛보기 힘든 것이었다.
이제 두뇌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소리 내어 읽는' 서당식 학습의 효과가 입증되었고, 특히 일본에서는 '음독(音讀)' 공부법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사실은, 서당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대부분 스스로 읽고 쓰는 자기 주도형 학습으로 채워졌다는 점이다.
학원에서 제 아무리 유명한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다 해도 그것은 그 분의 멋진 '시범'을 보는 것일 따름이다. 반드시 스스로 되새기고 익히는 과정이 이어져야만 온전한 자기 실력이 된다. 시범 경기를 보는 데 지쳐 버린 아이에게 진짜 공부할 시간을 마련해 주어야겠다.
한 필 훈 길벗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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