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과 의사파업 사태를 거치며 의사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많이 떨어졌다. 생명을 구하는 소명을 멀리 하고 돈에 연연한다는 인상이 짙게 남아있다. 의사들 스스로 "존경도 못 받는데 무엇 하러 힘들게 대학교수 자리에 연연하는가"라며 개업을 선택했다고도 한다.개업가에 경쟁이 치열해지자 근거가 불충분한 고가의 시술을 홍보하는 의사들도 더러 눈에 띈다. 의대생은 돈이 되는, 속칭 '비보험' 과목에만 몰려 "조만간 외과의사를 수입해야 할 것"이라는 말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지난 1년반 동안 의학담당기자로 취재하면서 만난 의사들은 꼭 그렇지는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잠 못자며 환자를 돌보고, 대가 없이 봉사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았다.
너댓시간씩 걸리는 심장수술을 오전, 오후로 빡빡하게 진행하는 전문의를 수술실에서 짬을 내 인터뷰했을 때, 그는 "입술이 파랗던 어린 아기가 한달만에 볼이 통통해져 퇴원할 땐 정말 가슴이 뿌듯하다"고 했다. 암 환자를 보는 한 의사는 환자의 약값이 걱정돼 일단 무조건 보험가로 처방했다. 그 결과 보험급여를 받지 못한 돈이 1,000만원에 이르는데도 그저 너털웃음을 지었다.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의사를 한 시간이나 기다리며 "차라리 늦게 오라고 할 것이지"라고 별별 불평을 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환자 진료가 길어져 자신이 점심을 굶고 나타난 의사에겐 한마디 원망도 하지 못했다. 외국학회에서 만난 한 의사는 출국 직전 수술한 환자에 대해 "젊은 여자가 벌써 자궁을 들어내야만 했다"고 흉보듯 개탄을 해놓고선 틈만 나면 국제전화를 돌려 환자의 예후를 살폈다.
안식년 동안 오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 사실을 전혀 알리려 하지 않은 의사도 있다. "레지던트 지원이 비보험 과에만 몰리니 어쩌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의사는 "그래도 아직 흉부외과를 지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음직스러운 것 아니냐"며 웃었다. 아마 기자가 채 보지 못한 곳에,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되새기며 묵묵히 생명의 전선을 지키는 더 많은 의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마음으로 격려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도 새해엔 기쁜 소식으로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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