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불행한 사람은 육체의 장애가 아니라 마음의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불행의 나락에 떨어져 보지 않고도 자신이 축복 받은 인생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큰 행운이다. 일상에 매몰되다 보면 온통 나보다 앞선 사람들만 보이고 내가 갖지 않은 것이 크게 보인다.배순훈(60)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장은 최성중(53) 한국장애인정보화협회장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을 은총으로 생각한다. 최 회장을 통해서 자신이 축복 받은 인생을 살고 있고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웃이 우리 사회에 많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배 위원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일하던 1998년 최 회장이 찾아왔다. 중소기업전시관에서 열리는 제1회 장애인정보화촉진결의대회에서 축사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배 위원장은 흔쾌히 수락하고 행사장을 찾았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두 손이 없는 장애인이 발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서 평생 소원이던 소설 쓰기를 하고 있다며 환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장애인에게도 컴퓨터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됐습니다."
배 위원장은 대학(서울대 기계공학과) 재학 시절인 60년대부터 컴퓨터를 다루었던 컴퓨터 1세대. 그렇지만 컴퓨터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도 없지 않았다. 컴퓨터가 주는 혜택 못지않게 해킹, 포르노 범람, 사생활 침해 같은 부작용도 크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배 위원장이 장애인대회를 참관하고 나서 정보기술(IT) 예찬론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 나라의 정보통신 정책을 책임지는 자리에 있으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그는 정보화촉진기금의 수혜 대상을 장애인에게 확대해야 한다고 판단, 정보화촉진기본법의 개정안을 제안했다. 34조 2항의 '지역적, 경제적 격차를 해소한다'를 '지역적, 경제적, 신체적 격차를 해소한다'로 바꾸는 것이 주요 골자. 이 법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 99년 후임 남궁석 장관 시절에 통과됐다. 이에 따라 현재 장애인에게 무선 데이터 이용요금이 30% 감면되는 등 다양한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배 위원장은 이와는 별도로 장애인 정보격차 해소를 위해 예산 100억원 편성을 기획했다.
"최 회장을 볼 때마다, 역경에 좌절하지 않고 인생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이 제게 큰 감동을 줍니다." 부산 태생으로 소아마비 장애를 갖고 태어난 최 회장은 젊은 시절에 척추염으로 투병생활을 했다. 병마와의 싸움 끝에 건강을 회복했지만 자신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학원을 찾았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할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문득 세상을 보고 듣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최 회장은 거듭 태어나게 된다.
최 회장은 장애인 복지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고 91년 서울에 올라와 지금의 한국장애인정보화협회의 전신인 대한장애인복지회 부회장을 맡았다. 98년 회장에 취임해 '사랑의 PC 보급운동'등을 벌여 장애인들에게 컴퓨터를 보급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요즘 배 위원장은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 한글과 컴퓨터 사외이사 등으로 바쁘게 지내면서도 장애인을 위한 행사나 강연회에는 빠지지 않고 나선다.
"자신의 신체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된다면 장애에도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분들에게서 배웠으면 합니다."
/이민주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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