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가 단위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 자릿수에서 네 자릿수로 옮아가는 초입에 있는 지수 1,000포인트는 특히 그랬다. 우리 증시에서 1989년 4월에 처음으로 지수 1,000포인트 시대를 연 이래 15년이 지나고 있는 오늘까지 네 자릿수 지수는 멀게만 느껴지고 있다.일본에서는 지난 60년에 닛케이지수가 1,000엔을 넘은 이래 그 이후로는 한번도 1,000엔대 아래로 빠진 일이 없었다. 미국의 경우는 72년 다우지수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고 주저앉은 이후 10번 이상 1,000포인트 벽을 시험하며 1982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000이라는 심리적 저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최근 미국 증시의 다우는 1만대를 재돌파하며 세계 증시를 흥분시키고 있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우리 증시가 거의 15년 동안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것인가?
증시가 잘 되는 나라에서는 자본의 선순환 과정을 통해 참을성 있고 현명한 투자자에게, 리스크(위험)를 받아들이는 모험 자본가에게, 사회에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가져다준 기업가들에게 주식시장이 보답을 해준다.
그러나 증시가 거꾸로 움직이는 경우에는 주식시장이 가난한 서민들로부터 악덕 자본가들 쪽으로, 주식회사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남의 돈을 겁내지 않는 무모한 범죄자들 쪽으로, 그리고 정직한 돈이 부정직한 계획 속으로 사라지는 잔인한 부의 이전(wealth shift)을 촉진시키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하게 된다. 증권시장이 새로운 불평등과 착취의 사회적 도구로서 작용하고 있다는 일부 우려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우리 증시에서 다시 한 번 지수 네 자릿수에 대한 도전이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승을 버텨주는 힘은 경제 성장률이 아닌 기업의 도덕성 여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증권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재 우리 세대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기업과 자본의 도덕성 회복이 깔려 있다. 가치 있는 주식 자본을 키우는 일의 한 축은 바로 투자자의 몫이다. 내년 우리 증권시장에서 투자자가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효율적인 테마는 '양심적 기업을 찾아라'가 될 것이다.
/제일투자증권 투신법인 리서치팀장 hunter@cj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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