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의 부도덕한 기업 운용 및 '정·경 유착'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비자금'이라는 용어는 올해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각종 신문 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 동안 소규모 벤처 기업의 비자금이 문제가 됐던 데 비해 올해는 주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주연으로 떠오른 점이 유별한 특징이다.특히, SK그룹은 올 한해 비자금 사건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 2월 구조조정본부 등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으로 출발한 SK그룹 수사는 최태원 회장의 구속기소를 거쳐 살아 있는 기업 사상 최대 액수인 SK글로벌의 1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적발로 정점을 이뤘다.
검찰의 칼끝은 SK그룹의 비자금 조성 및 정·관계 로비 수사로 이어지면서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과 손영래 전 국세청장 등이 줄줄이 사법처리됐다.
나라종금 사건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1차 수사 당시 축소·은폐 의혹을 받았던 검찰은 강도높은 수사를 벌여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염동연씨와 한광옥 전 민주당 최고위원 등을 구속기소하고 김홍일 의원과 안희정씨 등을 불구속기소했다.
6월에는 굿모닝시티 분양비리 사건이 터져나왔다. 이 회사 대표 윤창열씨가 3,000여명의 분양계약자로부터 3,700여억원의 계약금을 받아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관계에 물쓰듯 로비를 벌인 사건이었다. 정대철 당시 민주당 대표는 4억여원 수수 혐의로 현직 여당 대표로는 최초로 사전 구속영장 청구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대북송금 특별검사팀은 현대그룹의 비자금을 낱낱이 밝혀냈다. 특검팀은 현대가 정부와 산업은행 등의 지원을 받아가면서 자금을 마련, 정부 몫 1억달러까지 모두 5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했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이어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라는 '핵폭탄'을 검찰에 떠안겼다.
대검 중수부는 박 전 장관과 함께 현대 비자금 200억원 수수 혐의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을 구속기소하면서 특검팀에 화답한 뒤 SK해운 분식회계 고발사건 접수를 기점으로 여·야 정치권 핵심부를 향해 칼날을 겨누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LG, 현대차, 롯데 등이 모조리 압수수색을 당했으며 LG와 현대차가 '차떼기'수법으로 한나라당에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국민을 분노하게 했다.
여기에 썬앤문 그룹의 비자금이 또 다른 태풍의 핵으로 추가됐다.
그 결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와 최돈웅, 김영일 의원, 안희정씨와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이 잇달아 사법처리되거나 소환조사를 받았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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