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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본심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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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본심 총평

입력
200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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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권위는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이루어진 틀에 안주한다면, 그 권위와 전통은 경우에 따라 역사의 진로를 방해하는 장애물로 전락하게 된다. 시대의 흐름과 변화에 대응하고 나아가 이를 지도하며 인도할 때, 진정한 전통과 권위가 될 것이다.국내에서 가장 권위있고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백상출판문화상이 어느덧 제44회를 맞았다. 이는 그 동안 숱한 명저와 양서를 선정해 온 출판계, 문화계의 오래된 의식이자 성대한 잔치이다. 하지만 종래 학술서 중심의 저술상에 치우친 성격 때문에 출판계와 독서계의 최근 변화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올해 제44회부터는 심사 절차와 과정, 그 성격에 커다란 변화를 시도했다. 간략하게 그 내용을 소개하면 지난해까지는 인문·사회과학, 자연과학, 시사 교양의 세 분야로 나누어 저자에게 상금을 시상하는 저작상과 사전,문고, 기획, 편집, 번역, 어린이 등 총 13개 분야에 걸쳐 상금 없이 시상하는 출판상으로 크게 구분되었다. 그에 비해 올해부터는 저술(학술및 교양), 번역, 편집, 어린이청소년으로 구분하고 예심과 본심의 심사위원단을 달리 구성하였다.

이는 양적 팽창과 질적 성장을 이룬 한국 출판계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출판상과 문화상의 성격을 강화한 것이다. 제43회 심사와 제44회의 예심과 본심에 참여했던 심사위원으로서 나는 이런 변화와 혁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먼저 심사에 나타난 올해의 출판계 흐름과 특징은 첫째, 전통문화 특히 조선시대에 관한 훌륭한 업적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중복된 종수를 뺀 본심 후보작 65종에서 10여종 이상이 그러한 책이었다. 둘째, 미술과 미술사에 관한 책의 강세였다. 간접적인 것을 포함하면 역시 10여 종에 달했다. 이런 조선시대와 미술(사)의 성황은 심사 부문에 관계없이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셋째, 다양한 영역이 개척되었고 다채로운 필자가 등장하였다. 간과되었던 주제나 분야, 시대와 지역을 다루는 책들이 나왔으며, 원로와 중견학자 그리고 신진 연구자는 물론 '제도권'에 속하지 않는 저자나 역자도 나타났다. 넷째, 넓은 의미의 편집 역량이 돋보였다. 주제를 기획하거나 필자를 발굴하고 나아가 이를 책으로 구체화하는 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음을 느낀다. 각종 그림과 사진을 적절히 활용하여 디지털과 영상의 시대에 대응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그런데 새로운 시도는 적지 않은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순조로웠던 예심과 달리 본심은 다섯 시간에 가까운 '난산'이었다. 고백하건대 이는 성찬을 앞에 둔 미식가의 즐거운 고통이었다. 특히 편집 부문의 공동 수상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이다. 이 부문은 본래 기획 편집과 디자인의 두 분야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세계민담전집'이 기획과 디자인에서 모두 돋보인다면, '태학산문선'은 기획능력이 두드러진 책이다. 후자는 디자인의 측면에서 평균점에도 못 미치지만 한국의 출판문화에서 편집자가 더욱 중시돼야 한다는 측면과 백상출판문화상이 이를 선도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심사 위원 전원이 공동수상을 강하게 요청했다.

심사위원들의 요구를 기꺼이 수용한 한국일보측에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계속 본 상이 진정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면서 한국 출판계와 문화계를 선도하기를 바란다.

/이동철(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 심사위원

본심=도정일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대표(경희대 영어학부 교수),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정병규 정디자인 대표, 이동철 용인대 국제학부 중국학과 교수 예심=이동철 교수, 정재승 고려대 연구 교수, 출판평론가 표정훈씨, 유성식 예스24 도서사업본부 선임팀장, 허병두 '책따세'(청소년 독서운동 교사모임) 대표, 김원숙 인터넷서점 오픈키드 도서 컨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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