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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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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작

입력
200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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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가 이룩한 지적 성과는 책으로 집약된다. 국내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지닌 출판상인 제44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수상도서로 선정된 4개 부문 6종의 수상 도서는 올해 출판계 흐름과 현주소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책들은 저술, 번역, 편집, 어린이청소년 등 각 분야에서 독창적 시도와 모범적 글쓰기를 보여준 노작들로 평가된다. 특히 인문사회와 과학을 넘나들고, 고전작품을 현대적 관점에서 풀어 씀으로써 콘텐츠 개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올해 응모도서는 236개 출판사에서 1,196종, 1,885권으로 지난해보다 출판사는 52%, 종수는 14%가 늘어나 분야별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 저술 (학술)

'간다라 미술'(이주형 지음, 사계절)

간다라 미술은 인도 서북부 인더스 강 중류의 간다라 지방에서 기원 전후부터 수세기에 걸쳐 번성한 불교미술을 가리킨다.

기원전 327년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군이 가져간 서양 헬레니즘과 기존에 존재한 동방 불교정신의 환상적 조합이었다. 이 책은 불상의 탄생지이며 대승불교의 시원으로 우리 문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 간다라 지방의 미술사적 의미를 따진 국내 최초의 본격 개설서이다.

1999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간다라미술대전' 전시회 도록을 보완한 이 책은 독특한 미술양식이 나타나기까지 역사 종교 문화 지리 등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쇠퇴하는 과정, 현재적 의미 등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간다라 미술양식을 그리스 헬레니즘, 파르티아, 로마문화, 북방유목문화 등 외래요소의 결정체로 보았다. 불상의 의복표현은 그리스와 로마의 복식인 '토가'의 영향을 받았고,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은 파르티아 인물상의 형식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그 동안 학계의 연구성과와 자신의 견해를 적절히 결합하고, 이를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설명했다. 전시 때 나온 불상 사진과 도판자료 300여 점도 함께 실어 화보만으로도 간다라 미술의 흐름과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과 함께 유력한 후보로 올랐던 도서는 '노마디즘' '풍경과 마음' 등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와 정신분석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저서인 '천의 고원'에 대한 강의록인 '노마디즘'은 무겁고 어려운 내용에 다양한 학문의 세계를 녹여 넣은 역작이면서도 일반인의 교양서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을 받았다.

/최진환기자

● 편집

'세계 민담전집' (신동훈 등 엮고 옮김, 전 10권, 황금가지)

각 민족의 고유문화와 삶의 지혜가 담긴 민담을 원전 번역으로 골라 엮은 전집이다.

세계 여러 민족의 옛이야기를 전하는 책은 전에도 있었지만, 이 전집은 완성도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역이나 어린이용 축약판이 아니라 원전을 온전하게 전달하고, 각 민족어 전공자가 번역을 맡고, 잘 알려진 민담 외에 그 동안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들을 다수 넣는 등의 기획 의욕이 남다르다. 우리 손으로 세계의 민담을 원형 그대로 집대성, 재미와 교양을 모두 만족시킨 역작이다. 5년에 걸친 기획과 10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드는 이 전집은 한국편이 포함된 1차분 10권으로 상을 받게 됐다. 나머지 20권은 내년 말까지 완간될 예정이다.

전집류의 표지 디자인이 대부분 획일적인 것과 달리 낱권마다 각 민족의 전통문양 등을 활용한 도안으로 변화를 주면서도 전권에 걸친 통일성을 유지했다. 본문 디자인도 꼭 필요한 부분만 디자인하는 절제의 미덕을 발휘했으며, 튼튼한 양장 제책, 종이와 활자의 선택, 인쇄도 훌륭하다. 책값은 껑충 뛴 반면 종이와 인쇄의 질은 떨어지고, 디자인도 화려한 외양으로 튀려고만 하는 경향이 날로 두드러지는 국내 출판 흐름에 비춰 이 전집은 편집·디자인에서 모범으로 꼽힐 만하다. 올해 편집 부문 후보작에는 디자인보다는 기획의 우수성이 돋보이는 것이 많았다. 본심에서 수상작 외에 집중적으로 검토된 것은 '어린이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풀 백과사전'(현암사),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전 2권, 효형출판),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전 6권, 창비), '여의도에서 새만금으로'(생각의나무)이며, 그 중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는 마지막까지 심사위원들을고민하게 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저술 (교양)

'현산어보를 찾아서'(이태원 지음, 청어람미디어)

우리나라 최초 해양생물학 서적으로 국사 교과서에 책의 이름(자산어보·玆山魚譜)과 저자(정약전·1758∼1816)만 실렸던 실학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려 놓았다. 해양생물학자들도 무릎을 치고 감탄한 책이다. 책 제목의 '자(玆)'를 현으로 읽어야 한다는 지은이의 주장은 아직도 논란거리이다.

2002년 12월 1∼3권에 이어 최근5권으로 완간됐으며 모두 232종의 해양 생물의 생태를 추적했다. 내용 중에는 재미나고 희한한 이야기들이 많다. 상어의 이름이 까끌까끌한 피부에서유래했다든가, 1964년 다섯 마리가 잡힌 이후 사라진 귀신고래와 머리에 뿔이 달렸다는 거대한 신비의 물고기 화절육의 정체를 추적하기도 한다.또 현지 주민들이 부르는 해양생물의 사투리 이름, 요리법, 잡는 법, 속담 등을 섞고, 조선시대 유배문화의 실상과 실학자들의 의식까지도 들춰본다.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은 충실한 자료 그림과 사진. 특히 400여장에 이르는 세밀화는 서양화가 박선민씨가 실물을 보고 그린 것으로 정성과 성실함이 놀랍다. 과학과 인문학, 고전과 현대학문의 퓨전으로 대중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게 함으로써 대중 과학도서로서의 모범적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교양분야에서 이 책과 함께 강력한 수상작 후보는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정민 지음, 전 2권)로 막판까지도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다. 이 책은 도상학적접근을 통해 문학, 회화, 조류학 등을 아우르는 고급 대중 교양서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도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복원한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지음, 푸른역사), 현대 한국 남성의 진실한 자기 고백을 담은 '남자의 탄생'(전인권 지음, 푸른숲)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최진환기자 choi@hk.co.kr

● 편집

'태학산문선' (정약용 등 지음, 정민 등 옮김, 전 17권, 태학사)

정약용의 산문집 '뜬 세상의 아름다움'에독자들은 열광했다. 개혁가, 학자로만 알려졌던 그에게서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태학산문선은 이처럼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리나라와 동양의 고전·현대 산문을 소개하는 기획물이다. 한국고전산문·동양고전산문·한국현대산문·동양현대산문으로 구분하고 각 부문에서 맛깔스러우면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서정적 산문을 가려 뽑아 선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과 중국의 산문선 17권이 나왔으며 한문학과 중문학을 전공한 30·40대 소장 학자 15명이 번역에 참가했다. 심사위원들은 태학산문선의 탄탄한 기획을 높이 샀다. 한문으로 쓰인 옛 글을 매우 현대적으로 번역하고 적절한 주석을 단 것도 장점이다. 그 중 대부분은 그 동안 전혀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다. 숨은 보물 같은 옛 글을 찾아내어 켜켜이 내려앉은 세월의 먼지를 털어내고 새롭게 선보이는 이런 작업이야 말로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출판사측은 "옛 사람의 글쓰기를 통해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삶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한편 고전의 재해석을 통한 인문학 부흥의 긴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고기획 의도를 밝혔다. 기획자인 한문학자 정민·안대회는 "진정한 의미의 '옛날'이란언제나 살아있는 '지금'일 뿐"이라는 말로 고전산문의 가치를 역설한다.

한 시대의 지적 혁명은 산문에서 출발한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산문 출판이 활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잡문 취급을 받으며 대접이 소홀해졌다. 심사위원들은 태학산문선이 참된 산문 정신의 회복과 산문 르네상스의 촉매가 되기를 기대했다.

/오미환기자

● 어린이청소년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 (전 6세트, 보리)

'아이들에게 아이들 노래를 돌려주자.'

'보리 어린이 노래마을'에는그런 소망이 담겼다. 아이들이 쓴 시와 방정환부터 김용택에 이르는 주요 작가들의 동시로 노래를 만들고, 시와 그림, 악보가 하나로 어우러진 그림책과 음반을 묶어 6세트로 완간됐다.

20년 가까이 아이들 노래를 만들고 널리 알리는 데 애써온 가수 겸 작곡가 백창우가 작곡하고, 강우근 이태수 김유대 조혜란 이형진 설은형 등 6명의 뛰어난 화가들이 그림을 그려 이제껏 나와 있는 악보집이나 시화집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시노래 그림책을 완성했다.

음반에는 어린이 노래모임 '굴렁쇠 아이들'과여러 가수가 부른 노래가 각각 15∼20곡씩 실렸는데,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우리 가락이 살아있어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책 자체의 빼어남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책으로 본 내용을 직접 노래를 부르며 즐기도록 구성한 입체적 기획을 높이 샀다. 또 글과 음악, 그림을 통합하는 이런 작업은 여느 책 만들기보다 훨씬 번거롭고 힘들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수고를 기억했다.

이 시리즈의 노래들, 특히 아이들 시로 된 노래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의 꾸밈없는 마음을 담고 있어 사랑스럽고 감동적이다. 예컨대 유치원 꼬마들의 말을 옮긴 '애기 땜에 못살겠어' '맨날맨날 우리만 자래' 같은 노래는 그 천진함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노래마다 신나거나 슬프거나 삐친 아이들 표정이 생생히 떠오른다.

시장의 반응도 좋다. 세트마다 5,000권씩 찍었는데 지난해 12월에 나온 첫 권 '딱지 따먹기'는 전부, 나머지는 3,000∼4,000권이 팔렸다. 특히 초등학교와 유치원 교사들을 통해 알려지면서 '딱지따먹기' 등 여러 곡이 아이들 사이에 애창곡이 되었다. 아이들의 삶과 꿈이 오롯이 담긴 노래,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오미환기자

● 번역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이황·기대승 지음, 김영두 옮김, 소나무)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과 고봉 기대승(1527∼1572)이 13년 동안 주고받은 한문 편지를 모아 번역했다. 400여년전 두 사람이 나눈 치열한 학문 토론과 우정의 교류가 담겨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558년 당시 문과에 급제한 32세의 고봉이 성균관 대사성으로 있던 아버지 뻘인 58세의 퇴계를 찾아가면서였다. 첫눈에 서로의 인격과 학문에 취한 두 사람은 그 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일상의 소식과 철학적 담론을 주고 받았다.

1부 '일상의 편지들'에서는 끈끈한 두 사람의 인간적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퇴계는 고봉이 거만해지고, 술을 많이 마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꾸짖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고봉은 벼슬을 그만두고 싶다는 퇴계에게 가볍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2부 '학문을 논한 편지들'에서 핵심은 조선 유학계의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논쟁인 '사단칠정논변(四端七情論辯)이다. 인간이 지닌 네 가지 선한 단서와 일곱 가지 감정에 관한 논쟁에서 퇴계는 보통의 인간들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산다는 비관적 관점에 섰고, 고봉은 삶의 갈등과 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낙관적 입장을 보였다. 퇴계와 고봉에 관한 책과 논문은 적지 않다. 이 책의 원문인 고봉집도 '국역 고봉집'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국역본들은 나온 지가 오래돼 구하기도 어렵고 구해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이야기가 되기 쉬운 내용을 한글세대의 감성에 맞춰 아름답고 쉬운 한글로 옮겨놓은 것은 전적으로 번역자의 글 다듬기 노력의 결과이다. 경쟁작은 '묵자' '칭기스칸기'였다. 특히 '칭키스칸기'는 세계에서 세 번째 완역에 도전한 획기적 작업으로 번역상 취지에 적합했지만, 아직 완간되지 않았고 저자가 제43회 백상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자라는 점이 고려됐다.

/최진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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