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훈 지음 창비 발행·1만2,000원
모든 물질은 물과 불, 공기와 흙으로 만들어졌으니, 금의 네 원소의 구성비만 알면 모든 금속을 금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연금술은 세상 모든 것의 근원에 대한 한 믿음과, 그 근원이 인간의 간절한 소망을 이뤄주리라는 또 한 믿음에서 나왔다. 그것은 가스통 바슐라르(1884∼1962·사진)가 매혹됐던 시(詩)의 네 뿌리를 떠올리게 한다. '철학자 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인, 시인 가운데 가장 위대한 철학자'였던 바슐라르는 물과 불, 공기와 흙으로 빚어진 상상력의 시학(詩學)의 전도사 역을 맡는 데 평생을 바쳤다.
철학자 이지훈(37)씨의 '예술과 연금술'은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 인간의 꿈에 관한 이야기다. 중세의 연금술에서, 바슐라르의 시학(詩學)에서, 저자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그것이 금이든 예술이든)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인간의 소망을 보았다. 그래서 "연금술은 비록 실패한 과학이었지만 성공한 시학(詩學)"이었다. 연금술과 바슐라르 시학 모두 고대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인 물과 불, 공기와 흙을 질료로 삼은 것이다. 엠페도클레스가 자연의 구성요소로 상정했던 것을 바슐라르는 모든 사람의 원소로 되살려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이 이것이다. 바슐라르가 본 인간 마음의 근원은 자연의 근원과 같은 것이며, 시 또는 예술은 자연과 교감해서 이루어지는 상상력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 점을 놓치고 다만 (바슐라르 시학의) 주관적인 상상력이나 자유로운 몽상에 초점을 맞춘 독자들도 있다"고 짚는다. "바슐라르는 자연적미감을 되살림으로써 참된 서정성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는 자연과 인간 본래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그 속에서 인간에게 적합한 자리를 찾아내려 했다."
숨가쁜 세상에서 저자가 내놓은 '깊고 느린 몽상'은 소중하다. 사이버 공간의 불안한 리듬에 휘둘리는 현대인에게 저자는 인간의 마음의 뿌리가 느리고 지속적인 자연의 리듬에 있음을, 그리고 그 느린 흐름 속에서 놀랍도록 번개처럼 번쩍이는 직관의 리듬이 있음을 알려준다. 당연하게도, 섬광처럼 인간을 후려치는 직관은 사이버 공간의 명멸하는 가벼운 감각에 비할 바 없이 강하다. 김소월의 시와 김지하의 사상, 삼국유사의 설화와 새타령 등 우리의 사유로 빚어진 예술에서 저자는 물과 불, 흙의 상상력을 길어올린다. 그 실천적 노력도 소중하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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