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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랑비 속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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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랑비 속의 외침

입력
200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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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지음·최용만 옮김 푸른숲 발행·1만원

"사람들은 미래를 선택할 수 없는 순간에 과거를 떠올리는 소중한 권리를 갖는다."

중국 작가 위화(余華·사진)의 장편 '가랑비 속의 외침'은 주인공 손광림이 기억하는 1960·70년대 중국 남문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마을의 과부와 정을 통하고 예비 며느리를 성추행하는 등 평생을 파렴치하게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아내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 장남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도회지 친구들을 친구로 두었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잘난 놈'으로 대접받았지만 이내 그 친구들에게 배신당했다. 여덟 살 때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죽은 막내로 인해 가족은 나라에서 '영웅' 호칭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무 것도 받지 못하고 웃음거리만 됐다. 관을 짜달라던 할아버지가 며칠이 지나도 죽지 않자 아버지는 화를 냈다가 결국 죽음을 맞은 할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불효를 사죄했다.

시간의 흐름을 따르는 대신 주인공의 그때그때의 기억에 따라 들려주는 '중국의 옛날' 얘기에서 사람들은 울고 웃으며 가슴을 치고 한숨을 쉰다. 아이의 죽음을 입어 영웅 대접을 받으려는 아버지의 행동, 도회지의 삶을 부러워하다 자기 것이 될 수 없어서 좌절하는 자식의 모습은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의 일그러진 얼굴이기도 하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자리에서 위화는 과거의 민중의 고단한 삶을 새롭게 이어 붙여 똑바로 마주하도록 한다. 그 작업은 현재 어디에 서 있는지를 일깨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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