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발산 성당이 있다. 그날 한강 하구의 일산은 말 그대로 '안개 낀 성탄절 밤'이었다. 열 걸음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그 안개 속을 헤쳐 성당까지 걸어갔다. 처음엔 마당 안에까지 들어가 볼 생각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런수런하는 소리가 너무 정답게 들려 나도 모르게 들어가 보게 되었다. 누군가 내게 따뜻한 차를 나누어주었다.
대관령 아래의 산촌에 살았던 나는 중학생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교회 건물을 보았다. 그래서 강릉 용강동의 천주교회는 지금도 내 마음 안에서 이 세상의 어느 교회보다 더 고전적이고 오래된 교회처럼 생각된다.
이렇게 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원래 나무에게도 기도하고, 절에 가면 꼭 부처님이 아니더라도 그 절의 무엇에나 기도하는데, 어젯밤 성당에선 첨탑에서 땅바닥으로 늘어뜨려진 오색 전구 트리에게 기도했다.
그냥 기도했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지금 이 마당 안의 풍경처럼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안개 속에 참으로 평화롭게 보이던 마당 풍경이었다. 마당이 평화로우면 집안이 평화롭고 세상이 평화로운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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