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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첫 눈 오면 선생님을 생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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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첫 눈 오면 선생님을 생각해라"

입력
200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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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첫 눈을 접하는 느낌은 누구에게나 각별하다. 나는 첫 눈을 보면서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을 떠올린다.당시 우리 반 다른 아이들은 말썽도 피우면서 활달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전학을 자주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선생님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관심을 가졌다. 나는 어린 마음에 선생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래서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겨울 어느날 나는 산수 숙제를 깜박 잊은 것이다. 초저녁에 너무 졸려 조금 졸았는데, 일어나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숙제를 하지 않으면 방과 후 따로 남아 손바닥을 10대 맞고 숙제를 마치고 가야 했다.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렸다는 생각과 손바닥을 맞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숙제를 하지 않은 나와 친구들에게 손바닥을 때리지 않고 그냥 "숙제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만 하고 교실을 나갔다. 얼마 후 선생님께서는 주먹탄을 양동이에 반쯤 담아와 난로에 넣었다. 꺼져가던 난로가 확 달아오르면서 교실안이 훈훈해졌다. 선생님은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전에 간간이 날리던 첫 눈이 함박눈으로 변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교실 밖으로 뛰어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벌을 서는 중이라 선생님의 눈치만 살폈다. 힐끗 힐끗 창 밖의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교실은 조용했다. 노트 필기하는 소리와 난로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이 때 한참동안 팔짱을 끼시고 창 밖을 바라보던 선생님이 나직하게 "앞으로 첫눈이 오면 선생님을 생각하거라"라고 말했다. 손바닥 맞지 않을까 가슴이 조마 조마 하던 우리는 그제서야 선생님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은 일년동안 가르치며 정들었던 우리들을 새로운 곳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창가로 가 선생님과 함께 눈 내리는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첫눈이 오던 날 선생님의 사랑이 담긴 그 말 한마디는 훈훈한 교실 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고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 느낌은 변함이 없다.

/장주현·jh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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