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덤'을 업고 유럽 무대에 진출했던 해외파 태극전사들의 2003∼2004시즌 상반기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그러나 슬럼프라기 보다는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커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네덜란드에서 활약하는 이영표와 박지성(이상 PSV아인트호벤)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신뢰 속에 대부분의 경기를 소화했지만 이천수(레알 소시에다드)와 송종국(페예노르트)은 주전자리를 내준 채 벤치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유럽무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실력으로 당당히 맞서는 방법이외의 '지름길'은 없다. 태극전사들의 기량이 유럽 선수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충분한 자질을 갖추었기 때문에 거액의 몸값을 받고 유럽에 진출했을 것이며, 앞으로의 성공여부는 선수 자신의 연구와 노력에 달려 있을 뿐이다.
특히 이천수는 4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문화적 차이, 언어 문제, 상이한 축구스타일 등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적응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천수 본인도 "지금은 팀 동료와 스페인 리그를 배우는 시기이며 내가 적응할 때까지 팬들이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도 1980년대 중반 네덜란드에 처음 진출했을 때 초반 4개월 동안 시련기를 겪었다. 15∼20분 출장에 그칠 때가 많았고, 어떤 때는 몸만 풀다 경기가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현지 축구 스타일 및 언어 습득, 그리고 남 몰래 운동장에서 부단하게 노력한 결과 4개월이 지나면서 비로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본인이 노력하는 만큼 언젠가는 실력을 인정 받게 된다고 믿는다.
필자가 말하는 실력은 단순히 그라운드에서의 테크닉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낯선 축구문화와 상대 선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현지언어를 몸에 익히고, 팀 동료와 일심동체가 되겠다는 모든 노력이 병행돼야만 '진정한 실력'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벽을 넘기 위해서는 진정한 실력이 필요충분조건이라는 의미다. 성공과 낙오의 갈림길에 서 있는 젊은 유럽파 태극전사들은 눈앞의 성적에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철저한 유럽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로 나선다면 성공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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