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세상사가 복잡할수록 따뜻한 인간미가 그리워지는 것일까. 겨울철 최고 인기품목인 니트가 올 겨울엔 '손맛'을 더하고있다. 마치 손뜨개를 한 듯 굵게 짜거나 무늬를 넣어 만든 니트는 복고적이면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인기. 특히 올해는 굵게 짠 니트가 많아지면서 안에 받쳐입는 용도뿐 아니라 외투로도 니트상품이 대거 선보여 한층 다채롭게 활용되는 것이 특징이다./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손뜨개질 느낌, 니트외투를 입다
씨(SI) 디자인실의 박난실 실장은 "한동안 얇고 반질반질한 표면감의 섬세한 니트가 인기를 얻었지만 최근에는 직접 손으로 짠 듯한 느낌의 다소 투박하면서 디자인은 트렌디한 상품들이 인기를 얻고있다"고 말한다. 손뜨개 느낌의 강조는 루이비통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에서도 수공예적인 느낌을 살리기 위해 굵게 짠 니트상품을 내놓고있는 것과 맥이 닿는다.
니트 디자이너 이경원씨는 이런 경향을 "노마드(Nomad) 트렌드에서 볼 수 있는 '자연적인 것, 그리고 인간미에 대한 추구'가 패션계의 거대 흐름인 복고풍과 맞물려 나온 것"이라고 분석한다. 인조섬유인 프라다 천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천연소재인 모직, 그중에서도 오톨도톨한 표면감이 살아있는 헤링본이나 트위드 소재가 인기를 얻고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킷 안에 받쳐입는 옷에서 재킷 대용의 외투로 활용도를 넓힌 것은 올해 니트웨어의 큰 특징이다. 전통적인 손뜨개 스타일의 니트모자나 머플러는 물론 니트로 만든 재킷이나 니트코트가 다양하게 나오고있다. 니트의 짜임이 굵어져 보온 기능이 상당히 우수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스타일은 앙골라나 모 소재에 체인이나 징 등의 금속장식을 달아 색다른 멋을 연출하거나 로맨틱한 비즈 자수와 모피장식, 두툼한 니트 카디건에 얇고 섹시한 이미지의 레이스를 덧댄 화사한 상품들도 많이 보인다. 기본적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로맨틱한 이미지가 인기.60년대 복고풍의 영향으로 파랑 노랑 등 비비드한 색상의 풍성한 풀오버 니트도 많이 보인다.
짚업니트-섹시한 남자의 표상
남성용 니트가 괄목할만한 인기 아이템으로 등극한 것도 주목할만하다. 남성용 니트는 보통 양복저고리 안에 보온용으로 입은 V넥이 전부였지만 올해는 스타일과 활용도 면에서 놀랄만큼 다양해졌다. 우선 지퍼로 앞여밈을 한 짚업 니트와 카디건이 겉옷과 안에 받쳐입는 옷 겸용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모토롤라 광고에 나오는 정우성처럼 가슴부위를 노출한 니트차림이 대표적 스타일. 또 캐주얼 트렌드에 발맞춰 여성용으로 많이 이용됐던 목이 올라오는 풀오버스타일의 니트셔츠를 양복 안에 받쳐입는 경우도 많아졌다.
올 겨울 인기 상품인 목부분에 지퍼장식을 넣은 풀오버형 니트는 지퍼를 다 올리면 일반적인 니트로, 내리면 커다란 윙 칼라가 달린 색다른 니트상품으로 변신한다. 지퍼를 여민 상태에서는 얌전하지만 지퍼를 내리면 대담하고 트렌디한 이미지여서 부츠컷 스타일의 진바지나 스웨이드 가죽치마에 롱부츠를 신고 매치하면 멋스럽다.
니트재킷은 일반 재킷에 비해 딱딱한 느낌이 덜하면서 세련된 분위기를 풍긴다. 엉덩이를 살짝 가리면서 허리를 벨트로 묶어주는 스타일이 인기. 니트코트는 가장 독특한 아이템이지만 그만큼 소화하기가 쉽지않다. 길수록 멋진데 일자로 긴 실루엣을 그대로 살려서 입고 안에는 워싱 처리된 청바지와 함께 연출하는 것이 무난하다.
■인터뷰 | "손뜨개" 책 낸 패션디자이너 이경원씨
"옷에 대한 애정을 새삼 확인하게 해준 작업이었어요. 기계로 드르륵 짜내는 작품과 달리 한 코 한 코 직접 짜내려 가야하는 손뜨개 니트는 사람에 대한 정성과 사랑 없이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패션 디자이너 이경원씨가 손뜨개 가이드북을 발간했다. 책 이름은 '나와 내 남자친구를 위한 사랑 손뜨개'. 유명 패션디자이너가 동네 수공예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손뜨개 책을 낸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다 이씨는 책에 소개된 작품 63점을 직접 제작해 더 눈길을 끈다.
"남편이 영국에 교환교수로 가서 지난 여름 내내 혼자 있었어요. 비 내리는 긴긴 밤들을 꼬박 손뜨개질을 하면서 보냈지요. 니트 디자인은 했어도 직접 손으로 뜨개질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게 남다른 즐거움이 있더군요. 색상도 내가 선택하고 무늬도 직접 골라서 나만의 독특한 어떤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정말 신나잖아요."
'나와 내∼'는 10대에서 20대 풋풋한 젊은이들이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유행 아이템을 중심으로 꾸몄다. 목도리 모자 장갑 조끼 등 기본 품목부터 쿠션 애견옷 핸드폰 지갑 등에 이르기까지 하루이틀이면 만들 수 있는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소품들이 망라됐다. 실과 뜨개질 도구들도 상세히 소개했고 모든 아이템들은 제작방법에 대한 설명을 일러스트와 함께 꼼꼼이 달아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마침 올해 손뜨개 느낌의 니트가 유행으로 떠오르면서 책 판매도 순조로운 편이다. 11월 말 첫 출시됐지만 벌써 재판에 들어간다.
이씨는 이 책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누군가를 위해 직접 뭔가를 만드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기를 희망한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정성껏 만들면서 기쁨을 느끼는 순수한 마음, 요즘 '대장금'에서도 볼 수 있는 그 정성을 다할 때 얻는 즐거움을 젊은이들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 인생도 그렇게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짜내려가는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금상첨화구요."
이씨는 이화여대 장식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니트브랜드 '아가씨(agaci)'를 설립, 대담하고 유쾌한 니트디자인으로 정평을 얻은 디자이너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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