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하게 덮힌 정종 한 잔 들고 옆좌석 사람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겨울을 녹여버리는 듯 하다. 정겨운 오뎅집을 찾은 손님들이 오뎅바에 둘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맥주 등 찬 술보다 따끈한 술잔에 손이 가는 계절. 옆 좌석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훈훈한 정까지 나눌 수 있다면….
매서운 한파가 살을 파고드는 계절, 종종 걸음으로 귀가를 재촉하다가도 친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면 오뎅바가 발길을 유혹한다. 따뜻하게 덮힌 사케(정종) 한 잔에 뜨거운 오뎅 국물까지 더해지면 얼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고 고단했던 올 한해를 달래며 새해의 희망도 얘기하고 싶어진다.
오뎅과 정종을 메인 메뉴로 하는 오뎅바는 이른바 선술집이다. 일본식 이자카야 보다는 규모가 작고 메뉴도 간단한 편이다. 길다랗고 높직한 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주인이든 손님이든 자연스레 서로 친구가 된다.
오뎅바-어울리는 재미, 분위기를 먹는 곳
오뎅바에서 흔히 먹는 것은 우동과 오뎅. 그러나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더욱 많다. 오뎅바에서 높고 길다란 오뎅통이 놓여져 있는 ‘1’ 자, 혹은 ‘ㄷ’자형 테이블은 기본. 오뎅통을 가운데 놓고 테이블에 둘러 앉아 오뎅꼬치를 하나하나씩 꺼내 먹는 재미는 말로 다하기 힘들다. 오뎅통에서 나오는 뜨끈한 김이 코끝에 와 닿을 때마다 술잔에 손이 절로 간다.
같이 간 일행과 마주보고, 다른 손님들과는 떨어진 옆 테이블에 앉는다고요? 천만에 말씀. 오뎅바에서는 모두 옆에 같이 앉는다. 일행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모두 오뎅통을 중심으로 한 테이블에 앉는다. 마주 보고 있는 손님도 꼭 같이 온 일행 같다. 같이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모르던 사람과도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어깨를 맞대게 된다. 평소 같으면 불편하지만 여기에서만은 오히려 정감이 느껴진다. 어깨를 맞대고 있지 않으면 더 어색해 보이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주인, 손님 구분도 없어진다.
서울 광화문의 ‘향헌’은 공간이 좁다 보니 ‘손님들이 움직일 때 서로 일어나 비켜주거나 허리를 구부려 공간을 내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집에서 5년 단골은 신참에 속할 정도. 그만큼 오래된 손님들이 넘쳐 난다. 주인 최인태씨 부부는 손님들로부터 ‘아버지’ ‘어머님’ ‘삼촌’ 등으로 불린다.
청담동의 오뎅바 ‘마루’도 높고 길다란 테이블의 폭이 좁아 앞 사람과 마주하다 보면 옆에 있는 것 만큼 가깝게 느껴진다. 테이블이 높으니 먹을 때 수그리지 않아도 되는 것은 또 다른 장점.
소주 없는 선술집
오뎅바에서 소주를 주문하는 사람은 보기 힘든다. 정종이 대세이고, 특히 따뜻하게 끓인 히레사케나 도쿠리가 인기다. 비록 소주는 없더라고 대부분 백세주는 갖추고 있다.
색다른 안주거리
오뎅바의 최고 인기 메뉴는 단연 오뎅. 어묵을 넣고 적당히 오뎅국물에 끓이기만 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뎅국물이 별거 있나?’ ‘오뎅국물이 다르면 얼마나 달라?’ 라고 말했다간 큰 코 다친다. 저마다 오뎅국물에 비법이 숨어 있고 집마다 국물 맛이 다르다. 청담동의 오뎅바 ‘돈부리’의 박우용(36) 사장은 “지금과 같은 오뎅 맛에 도달하는데 1년이 넘게 걸렸다”고 말한다.
오뎅바에는 오뎅만 있을까? 역시 아니다. 시샤모 가마보코 마루야키 등 익숙치 않은 종류부터 메로구이 꼬치 도가니심줄 등 친숙한 것들까지 안주가 다채롭다. 집집마다 조금씩 달라 찾아다니며 먹어볼 만 하다.
누구나 부담없는 곳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에 있는 오뎅바라고 젊은 사람들만 갈까? 그렇지 않다. 오뎅바는 어디에 있건 나이를 묻지않는다. 30~40대건, 20대건 오뎅바에는 여러 연령층이 자연스레 섞여 있다. 함께 술을 마시던 중년층 아저씨가 20대 연인들과도 친숙하게 대화가 오고 간다. 오뎅바 마루의 심형선 사장은 “지갑이 얇아도 분위기 있게 간단히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곳이 오뎅바”라고 소개한다.
정종은 日사케 종류, 우리의 청주와같아
겨울철 뜨끈한 오뎅 국물에는 역시 따스하게 데운 청주(정종) 한 잔이 제격이다. 쌀로 빚어 감칠맛이 도는데다 마신 후 부드럽고 깨끗한 뒷 맛이 부담없어서다.
두산의 청주 담당 조판기 과장은 “특히 겨울철 따뜻한 오뎅 국물과 청주 한 잔을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며 피로가 풀리는 듯 하다”며 “오뎅 국물과 따뜻한 청주 한 잔은 찰떡 궁합”이라고 소개한다. 실제 오뎅 국물을 만들때도 청주를 넣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비린내를 없애주기 때문이라고.
청주는 사람 체온과 비슷한 37~38도로 데워 마셔야 제맛이 난다. 복지느러미를 청주에 넣어 데워 마시는 ‘히레사케’는 50도 이상으로 아주 뜨겁게 해서 마신다. 100~200㎖의 작은 호리병처럼 생긴 병은 ‘도쿠리’라고 부른다.
흔히 청주와 정종, 사케 등을 혼용해서 쓰는데 정확한 우리말은 청주이다. 엄밀히 말해 정종은 일본산 유명 청주 브랜드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사케는 청주의 일본 말로 정확히 ‘청주=사케’이다.
쌀로 빚는 청주는 ‘한민족의 와인’. 원래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마시던 술인데 백제시대 일본으로 넘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주세가 종전 70%에서 30%로 내리면서 청주 가격도 예전 보다 많이 싸졌다.
/글 사진 박원식기자 parky@hk.co.kr
맛있는 오뎅바들
돈부리 (02)517-9570 서울 압구정동 캘리포니아 휘트니스 길건너편 골목
2001년 8월 문을 연 청담동 오뎅바의 원조격. 삼성 직원이던 주인 박우용씨가 후배 최진완씨와 함께 독립, 일본 삿뽀로의 오래된 선술집을 모델로 오픈했다. 오뎅은 생선 비율이 높은 부산오뎅만, 국물은 일본에서 수입한 재료를 토대로 만든다. 조미료는 쓰지 않고 생강 무 다시마 파 양파 멸치 등 8가지 재료를 넣고 일본 간장으로 간을 맞춘 국물 맛이 한결 같다.
오뎅 한 그릇을 시키면 새우와 문어, 곤약 고구마 연근, 그리고 당면을 넣은 만두 속이라고 할 수 있는 ‘긴차크’가 추가된다. 오뎅통 위의 4각 대나무 장식이 운치있다. 오래 됐지만 분위기가 깔끔해 자리를 잡으려는 손님들이 줄서 있다. 오뎅 한그릇과 메로구이는 각각 1만5,000원, 알이 꽉 차 있는 시샤모 구이도 1만5,000원. 버터와 된장을 쓰지 않고 그냥 기름을 빼며 구운 메로구이의 소금간이 짭짤하다.
오뎅바 마루 (02)514-5545 서울 청담동 한국도자기 빌딩 뒷골목
‘ㄷ’자 모양의 커다란 테이블이 돋보인다. 한 켠에 오뎅통이 있고 손님들은 테이블을 빙 둘러 앉는다. 테이블 안쪽에도 앉을 수 있는 것이 특징.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블랙톤에 꽤 고급스런 분위기. 부산에서 공수한 모듬오뎅이 1만2,000원. 오뎅과 해물 야채 등 10여가지 재료에 피자치즈를 위에 얹고 구운 마루야키는 2만원. 일본식 빈대떡이랄 수 있는 오코노미야키와 피자의 중간 형태로 노르스름한 것이 맛깔나 보인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매운 맛에 누룽지를 가미한 핫마루야키는 2만5,000원.
뚝배기에 해물과 야채가 듬뿍 들어간 해물모듬누룽지샤브와 새우치즈 모듬야키, 오뎅전복소스볶음(이상 1만8,000원) 등 주인 심형선씨가 개발한 메뉴들이 워낙 다채롭다. 특히 태국에서 수입한 오뎅으로 만드는 태국오뎅탕(1만6,000원)은 이 집의 별미. 배고프면 오뎅주먹밥(1만원)으로 배를 채울만 하다.
정겨운 오뎅집 (02)553-5584 서울 역삼동 상록회관 뒤 대로변,
신사점 (02)3442-6574 영동호텔 길건너 가로수길 초입
좌석수 단 16개. 들어 갔다가 자리가 없는 것을 보고 되돌아 가기 일쑤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계속 밀려든다. 길다란 오뎅통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앉는 테이블이 유일한 테이블. 오뎅통에 담겨 있는 여러가지 종류의 꼬치를 꺼내 골라 먹는 재미가 그만. 한 개에 800원씩 나갈 때 계산한다. 모두 부산오뎅들.
밀가루나 다른 재료를 섞지 않고 100% 고급 생선살로만 만든 가마보코는 이 집의 자랑. 납닥한 모양인데 차갑게 먹는 맛이 일품이다. 원하면 튀겨도 준다. 한 개 800원. 안에 잡채 등 고급재료가 듬뿍 들어가 있는 유부주머니는 요깃거리. 한 개 1,000원. 북태평양에서 잡히는 열빙어인 시샤모는 6,000원. 일본 간장 맛을 배제한 토속적인 국물맛이 독특하다. 개운하면서도 맑은 맛이 특징. 국물 맛을 내는데 천일염을 사용했다. 서빙하는 주인집 식구들의 친절함이 남다르다. 신사점은 이달 말 열 예정.
향헌 (02)738-8186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
22년 전 문을 연 뒤 지금의 주인 최인태씨가 그 맛을 이어오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5평의 좁은 공간에 길다란 테이블이 두 줄로 나란히 놓여있는 것이 이채롭다. 좌석 12석. 대표 주종은 역시 정종. 2층의 5평짜리 방에는 테이블 5개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손님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 마시는 것은 똑같다.
일본식 오뎅과 함께 다양한 꼬치구이가 자랑. 얕은 불에 10여분 구워 나오는데 고소한 맛이 인기만점이다. 참새와 메추리를 비롯, 물오징어 민물장어 야키도리 민물장어 은행 맛살 마늘 등 모두 살아있는 재료로만 굽는다. 2꼬치에 2,000원인데 참새만 한꼬치 2,000원. 참새구이는 씹는 맛이 쫀득하고 메추리 구이도 고소하다. 점심때는 북어국과 우동 비빔밥을 4,000원에 맛볼 수 있다.
오뎅바 (02)333-1139 지하철 2호선 홍대역 인근
올해 홍익대 앞에 문을 연 오뎅바. 영월에서 유명한 빨간 오뎅이 별미다. 영월에선 꼬치 오뎅을 빨간 떡뽁이 국물에 찍어 먹는 것이 유명한데 이를 응용, 빨간 오뎅을 내놨다. 오뎅에 양배추 당근 조랭이떡 감자수제비 고추 양파 등을 넣고 빨갛게 볶은 것이 매콤하면서도 뜨겁다. 오뎅국물을 사용해 볶았다.
모듬꼬치와 유부주머니 잡채오뎅 계란 고구마 등이 들어간 모듬오뎅은 9,000원, 해물오뎅과 야채오뎅 맛살오뎅은 각각 1만2,000원. 고급 오뎅이 듬뿍 들어 간다. 주인 김용성(30)씨는 압구정동 오뎅바 돈부리 최진완씨의 후배. 오뎅은 꼬치오뎅을 빼먹거나 모듬 그릇으로 맛볼 수 있다.
부산오뎅 (02)542-0710 강남구청 구청사에서 선릉쪽 대로변
13년 전 문을 연 역사 깊은 오뎅바. 오뎅통 하나가 놓인 널찍한 테이블에 좌석 수가 17석 밖에 안된다. 그러나 단골 손님들이 줄을 선다. 꼬치 오뎅 하나에 800원. 도가니 스지로 불리는 도가니 심줄이 별미 메뉴로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입맛을 돋운다. 한접시 3,000원.
고급 오뎅인 가마보코도 한 개 800원. 문어와 새우 게살 등이 들어 간 유부 주머니로 허기를 채울 수 있다. 오뎅 국물 맛이 시원하면서도 깔끔하다. 20대는 물론 50대까지 나이에 관계없이 단골 손님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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