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의 한 동사무소 직원 오모씨는 2000년 3월 그동안 남다른 애정을 갖고 돌봐주던 장애인의 친정 어머니가 찾아와 "작은 정성이니 제발 받아달라"며 건네는 참깨봉지를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집에 와 봉지를 여니 현금 20만원이 든 봉투가 함께 들어있어 오씨는 다음날 바로 구청에 신고했다.서울시가 2000년 2월부터 운영해온 공무원들의 '뇌물 고해성사소' 클린신고센터의 첫번째 신고 사례다. '참깨봉투 신고'를 시작으로 한 클린신고센터가 운영 3년이 지나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다. 올 10월31일 현재 총 308건, 8,360만원어치가 신고됐다. 이중 268건이 원래 주인(제공자)에게 되돌려 줬고, 주인을 찾지 못한 40건은 은행에 예치 혹은 세입조치됐다. 서울시 조사담당관실에서 나눈 유형에 따르면 감사표시가 40건, 업무관련 부탁 85건, 단순 제공이 63건이다.
지금까지의 신고 건수 중 최고액은 현금 1,000만원이 든 쇼핑백. 2002년 2월 성동구청 노모씨가 신고한 것으로 재개발지구내 다가구주택 소유주로부터 세대별 입주권이 주어지는 다가구주택으로 변경시켜달라는 부탁과 함께 받은 것이다. 반면 가장 작은 액수는 2000년 6월 동대문구에 신고된 것으로 주민증재발급에 고맙다며 건넨 5,000원이다.
올해 들어 가장 큰 액수는 300만원. 2월 서대문구 재무과에 국유재산 매입을 원하는 민원인이 찾아와 50만원을 주고 갔다가 되돌려 받은 사례가 있다. 이 민원인은 '액수가 작아서 그런가 보다'고 판단했는지 한달 뒤 신문지로 둘둘 말아온 300만원을 막무가내로 놓고 갔다고 한다.
제1호인 '참깨봉지'처럼 돈봉투의 상당수는 은폐돼 전달된다. 구로구 모 동사무소에서는 무심코 받은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 음료수를 마시려다 봉지에서 30만원 봉투를 발견해 신고했고 주택관리사시험 응시자 한명은 케익상자에 30만원을 넣어 제공했다가 되돌려 받았다.
뭉칫돈을 펑펑 내는 기분파들도 많다. 지하철 영등포구청역과 영등포소방파출소는 2001년 7월에 100만원씩, 9월에 50만원씩을 신원미상의 중년남자로부터 받아 신고했고, 양천구 교통행정과에서는 올해 6월 한 민원인이 좋은 차번호를 받았다며 20만원을 건넸다. 도봉소방서에서는 화장실을 이용한 한 시민이 수고한다며 1만원을 던져주고 간 사례도 있다.
신고된 금품은 저마다의 다양한 이유만큼이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노점상 철거 관련 민원인이 두고 간 휘호, 사업소 근무중인 공익요원 아버지가 추석선물로 건넨 갈비세트를 비롯해 냉동조기, 곶감, 오징어, 참기름, 화장품, 꿀, 넥타이 등도 신고됐다. 백화점이나 구두상품권도 많이 애용되고 최근에는 오일교환권도 등장했다.
현장에서 되돌려주지 못해 신고한 것들이라 이들 물품을 다시 돌려보내는 것은 클린신고센터 몫이다. 각 자치구나 서울시 클린신고센터 담당자들이 직접 제공자를 찾아가 되돌려주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굉장히 쑥스러워 한다고 한다. "너무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각박해서야 세상 살맛 안난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클린신고센터 담당자들이 겪어야 할 고충이다.
서울시 클린신고센터 담당 곽태수씨는 "자기는 절대 준 적이 없다며 되레 화를 내는 황당한 경우도 종종 있다"며 "금품을 제공한 이유가 들통날까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고 공무원들에게는 표창이나 해외시찰 등의 포상이 이뤄진다. 2001년 10명, 2002년 8명이 선정돼 해외시찰을 다녀왔고 올 9월에는 전반기 신고인 33명 전원이 시청에서 시장표창과 함께 10만원권 도서상품권을 받았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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