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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2003 사건]<5> 脫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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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2003 사건]<5> 脫코리아

입력
200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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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등학생들의 조기유학 행렬, 20∼40대 전문직 종사자의 해외이민 열풍, 일부 여성의 원정출산 붐. 2003년은 한국 탈출의 해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불황 속에서 사교육비 부담에다 폭등하는 부동산, '삼팔선'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삭막해진 고용불안정 상황 등이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 그러나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병역기피와 이중국적의 혜택을 누리고자 조기유학이나 원정출산을 하는 행태는 사회의 지탄을 받았다.연초부터 꾸준히 이어지던 해외이민 행렬은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절정을 이뤘다. 경기침체의 긴 터널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40대 이상 경제적 여유가 있거나 새로운 사업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졌던 이민 행렬에 20∼30대까지 가세했던 것. 삼성경제연구소가 4월에 실시한 조사에서 20∼30대 응답자의 50%가 "가능하면 이민을 가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특히 한 홈쇼핑채널이 판매한 캐나다 마니토바주 이민 알선서비스 상품은 2차례에 걸쳐 4,000여명의 신청자가 몰려들어 판매액이 700억원에 이르는 대박을 터뜨렸다. 또 추석 연휴 직전 열렸던 해외이민 박람회에는 30대를 중심으로 2만여명이 몰려 화제가 됐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캐나다에서도 개발되지 않은 지역인 마니토바주로 떠나겠다는 신청자의 80%가 20∼30대의 청·장년층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지역도 가리지 않았다. 과거 미국, 캐나다 등 선진국 위주로 사업이민을 떠나는 사람이 주류였다면 2003년에는 몰타, 피지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섬나라까지 한국인의 이민 행렬이 이어졌다.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 교수는 "대부분의 이민 희망자는 한국 사회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며 "정치 사회적 혼란을 가라앉히고 경기를 활성화하는 등 한국 사회 내부 시스템을 완비하지 않는 한 한국 탈출 행렬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조기유학 열풍도 올 들어 더욱 확산됐다. 유학연수 박람회 참가자는 대부분 대학생이 아닌 초등학생이었고, 유학비자를 받은 학생 가운데 초등학생 비율은 2001년 7.8%에서 올해 9월 현재 16.5%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이에 따라 해외유학연수 수지 적자폭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자식을 외국으로 떠나 보내는 부모들은 한결같이 "한국에서 과외 시키고 학원 보내는 데 너무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한국 탈출 열풍 가운데 원정출산은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9월 주로 서울 강남지역에 살며 의사나 기업체 사장을 남편으로 둔 임산부들이 알선업체를 통해 미국으로 출국, 아이를 낳은 뒤 귀국했다가 경찰에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시민권을 얻으면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고 갖가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을 노렸던 것. 원정출산 산모와 알선업체를 처벌할 국내 법규가 없어 사건은 마무리됐지만, 미국 이민국이 한국 임산부의 미국 입국을 철저히 감시키로 하는 등 국제적 망신을 샀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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