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가장 큰 축일인 크리스마스 시즌의 독일 거리는 화려하고 부산하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인 강림절부터 독일인들은 벌써 촛불과 전구 장식 등으로 창문을 꾸미기 시작했다. 거리에선 뿌리 밑둥을 잘라낸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 나무들을 팔고, 시내 곳곳엔 뜨겁게 데워 마시는 포도주와 케이크의 일종인 만델, 초콜릿과 사탕을 입힌 과일 등을 파는 크리스마스 장이 섰다. 관공서나 주요 거리엔 멋지게 장식된 대형 크리스마스 나무가 등장했고 시내 번화가의 가로수들은 화려한 조명과 불빛 띠를 두르고 멋진 야경을 연출한다.방송에선 크리스마스 만찬의 주 메뉴인 거위나 칠면조 구이법이 새해의 별자리 점과 함께 소개되고, 선물용 상품과 각종 공연 행사 광고들이 신문 지면을 메운다. 그 중엔 산타 중개광고들도 있는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산타 아르바이트생들이 부모의 요청에 따라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일을 한다. 아이들은 해가 바뀔 때 터뜨릴 폭죽을 사 모으고 산타 모양의 초콜릿이나 직접 만든 작은 선물들을 교환한다.
대부분의 학교와 직장은 이미 자체 축하행사를 끝으로 한 해 업무를 마감하고 크리스마스 주 월요일부터 1월 첫 주말까지 이어지는 휴가에 들어갔다.
그러나 화려한 축일의 부산함 속에서 2004년 새해를 앞둔 독일 시민들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많은 논란과 반발을 샀던 긴축 정책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화는 새 의료보험 시행 규칙이다. 의료비를 거의 100% 보장해주던 보험 회사들의 누적된 적자로 인해 새해부터는 피보험자가 보험료 외에 매분기마다 10유로의 추가비용을 의사에게 지불해야 한다. 저소득자를 위한 추가의료비 면제혜택도 축소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베를린시의 사회복지비용 삭감으로 내년부터 많은 사회보장 혜택들이 축소 또는 폐지된다.
시 지원으로 운영되던 실업자를 위한 할인교통 티켓이 없어지고 일반 대중교통 요금도 전체적으로 인상된다. 유치원에 대한 국고보조가 크게 삭감됨에 따라 각 가정은 30∼100% 까지 인상된 유치원비를 감수해야 한다. 집세 일부를 보조해주던 저소득자용 사회주택에 대한 지원이 폐지되어 월세가 오르고, 장애자 복지지원 감축으로 많은 장애인 복지 시설들이 문을 닫거나 인원을 줄여야 하는 것도 이 여파다. 등록금 도입과 예산감축 등에 반대해 벌였던 이번 학기 베를린의 대학생 시위에 많은 시민들이 동조했던 것도 일련의 감축 정책들에 대한 불만이 누적된 때문이었다.
오랜 연륜의 사회국가 독일이 경제불황이라는 이 거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독일인들과 함께 2004년을 맞는 나 역시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김 남 시 독일/훔볼트대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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