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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오렌지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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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오렌지성탄절

입력
2003.1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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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다이 하드'의 뉴욕경찰관 브루스 윌리스는 크리스마스만 되면 죽을 고생을 한다. 남들이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시간에 브루스 윌리스는 테러리스트들과 사투를 벌인다. 1편에서 파티가 열리는 아내의 사무실을 점거한 테러리스트 12명을 차례로 해치웠던 그는 2편에서도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내를 마중하러 갔던 공항에서 마약대부를 구출하려는 테러조직과 대결하게 된다. 브루스 윌리스는 이 시리즈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람보나 터미네이터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었다. 모든 테러가 이렇게 영화처럼 해결된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이다.■ '다이 하드'는 테러와 크리스마스를 결합시켜 흥행에 성공했지만, 테러리스트들에게 크리스마스만큼 테러효과가 큰 시기도 없다. 21세기의 전쟁양상이 12세기의 십자군전쟁처럼 종교전쟁 성격이 강해 기독교명절인 크리스마스의 안전이 더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성탄절의 색깔은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오렌지 크리스마스로 변해 버렸다. 미국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전후에 9·11과 같은 대형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5단계 경보체계 중 두번째인 오렌지경보를 발령한 상태다.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세이프(안전한) 크리스마스가 문제다.

■ 테러경보에는 과장과 엄포가 섞이게 마련이지만, 미국의 불안감은 최고로 높아져 있다. 알 카에다의 조직원이 수 개의 외국항공사 조종사가 돼 있을지도 모른다며 9·11때처럼 비행기를 이용한 자살공격까지 걱정하고 있다. 미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테러비상이 걸렸다. 이라크 파병결정으로 테러위협에 더 노출된 우리의 성탄절도 오렌지빛으로 물든 것 같다. 이라크 국내외의 무장세력이 한국과 관련된 목표물에 테러를 자행할 개연성이 있다는 첩보에 따라 외교부가 긴급훈령을 보내고, 이달 말로 예정됐던 대사관 개관식도 연기했다고 한다.

■ 각 종교의 성탄절 메시지는 올해에도 변함없이 갈등과 불화의 종식을 강조하고 폭력과 전쟁의 사슬을 끊자는 것이었다. 특히 22일 예루살렘에서는 '2003이스라엘 평화대행진과 화합의 한마당' 행사가 열렸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의 대표들은 영어 히브리어 아랍어로 평화를 뜻하는 피스, 샬롬, 살람 알라이쿰을 외쳤다. 그러나 다음 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사람 8명이 숨지고 45명이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전쟁과 테러로 얼룩지지 않은 성탄절은 거의 없었다. 올해에도 평화는커녕 큰 참사가 없기만 바라야 할 형편이다.

/임철순 수석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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