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으면서 공감하는 것은 바로 송구영신의 마음일 것이다. 연말 성탄절은 그 자체로 올 한해를 회고하고 다가올 새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서양 문화의 상징인 크리스마스를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달갑게 생각할 리 없겠지만 그에게도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갖는 송구영신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김 위원장에게 2003년은 '어려운' 한해였음이 분명하다. 올해 벽두부터 북핵 문제로 미국과 기싸움을 벌여야 했고 한해를 마감하는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다. 미국과 극한 대치를 벌이다가 두 번의 회담 기회를 얻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인 소득이 없다. 더욱이 최근 후세인이 체포되고 가다피마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했으니 김 위원장의 심사는 더욱 복잡할 것이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선군정치'를 내세운 정치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의 개인적 아픔이 겹치는 해였다. 10월말 김용순 비서의 사망은 그 자리를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공백을 실감하게 했고 크게 신임해온 조명록 차수도 신병 때문에 여러 차례 치료를 받아야 했다.
경제적으로는, 7·1 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경제개혁을 가속화하면서 북한 전역에 종합시장을 확대하고 농산품뿐만 아니라 공산품도 유통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이런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제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전력난이 여전하고 식량난 역시 호전되지 않았다. 7·1 조치 성공의 관건인 공급부문의 보장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시장에서는 인플레가 물가를 위협하기도 했다.
올해 김 위원장이 특히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은 대외여건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는 정치적 안정도, 경제적 변화노력도 제대로 성과를 내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핵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그런대로 유지발전되었지만 그것이 김 위원장의 어려움을 상쇄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새해를 맞는 김 위원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선, 핵문제와 관련해 특별한 결단을 내려야 할 처지임이 분명해 보인다. 2차 6자회담이 날짜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반적인 국제상황마저 여의치 않다면 결국 미국과 전면대결이라는 극한적 카드와 선(先)핵포기 수용이라는 극적 타협의 카드를 놓고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이라크 상황과 미국 대선 전망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국내 정치적으로 선군정치를 지속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실리를 여전히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년이 김정일 위원장의 당사업 40돌이 되는 해임을 감안한다면 2005년 당창건 60주년을 준비하면서 선군정치와 당사업 간 명확한 관계설정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선군사상이 주체사상과 어떤 연관을 맺는지도 명확히 정리해야 할 과제다.
집단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이른바 '실리사회주의'의 총론적 방향에 대해서도 김 위원장은 깊이 심사숙고해야 한다. 선군사상이 실리적 개혁을 추진하는 정치방식으로서 정리될 가능성도 있다. 즉, 가장 잘 조직되고 가장 믿을 만한 군이 전면에 나서 경제개혁을 이끄는 이른바 '선군의 실리사회주의'가 김 위원장이 잡을 주요 노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것은 1960년대 박정희 시대의 육사 엘리트를 동원한 경제개발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결국 대외여건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는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국제정세가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이는 사실 김 위원장의 능력과 의지 밖의 일일지도 모른다. 이래저래 그에게 올해와 새해는 어려움의 연속일 것 같다.
김 근 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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