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실패였다. 왜 이다지 눈썰미가 없고, 눈대중을 못하는지…. 구내식당에서 난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리고 난감했다. 남은 음식을 어떻게 한다…. 이미 내 배는 차있었다. 다른 도리가 없었다. 버릴 수밖에. 사정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버리고 돌아섰다. 그때, 벽에 붙은 스티커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연간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410만톤, 15조원. 월드컵 경기장 70개 만들 수 있는 돈.'그 때부터 식판에 '적당량'만 퍼 담기로 했다. 밥알 하나, 반찬 한 점 남기지 말자 작정했다. 그러나 힘들었다. 양껏 먹고싶은 욕심이 앞서 밥을 담으면 남고, 모자란 듯 담으면 쉬 배가 고팠다. 생각보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은 내려졌다. 수도승도 아닌 세속인에게 '적당량'이라는 접점은 없었다. 버려지는 15조원에 단돈 1원도 보태지 않으려면 부족한 듯, 손해 보는 듯 음식을 담아 깨끗이 먹어치우는 수밖엔 없었다. 내 배를 잔뜩 채우는 사익보다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서 나오는 공익이 더 클 테니까….
환경운동가는 아니지만, 음식을 남기지 말자는 생각이 든 것은 비단 '잔반(殘飯)이 너무 많다'는 구내식당 영양사의 타박성 이메일과 스티커 문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달 전쯤 주간한국에 난 '쪽방동네 사람들'기사 가운데 한 쪽방 노인의 말 한 마디가 결정타였다. "사는 게 아니라 버텨 간다." 삶의 고통이 그대로 밴 쪽방 노인의 한 마디는 이후 식사 때마다 귓가를 맴돌았다.
쪽방은 0.5∼0.7평 크기다. 어른 한 명이 누우면 꽉 찬다. 부엌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화장실은 수십 명이 함께 사용한다. 하룻밤 자는 데 6,000∼7,000원. 거미줄 같은 전선과 다닥다닥 붙은 구조 때문에 불이라도 나면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서울에만 4,200여개의 쪽방에 3,000여명이 기거하고 있다. 대개 독거 노인, 장애인, 알코올 중독자, 일용직 종사자 등이다.
이들은 대부분 종교단체 급식에 의존한다. 영등포 쪽방동네에 있는 광양교회는 식사 제공에 하루 평균 80∼100㎏의 쌀을 쓴다. 교회 활동을 지탱해 주는 건 평범한 자원봉사자들이다. 돼지저금통을 깨거나 꼬깃꼬깃 얼마 안 되는 돈봉투를 내밀고, 때로는 노력봉사를 하기도 한다. 그런 사정을 읽다 보니 제 배 채울 만큼의 적당량도 가늠하지 못한 채 음식을 버리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최저생계비보다 훨씬 적은 소득으로 생활하는 절대빈곤층은 도시가구의 10%에 이른다. 무의탁 독거 노인, 소년소녀가장, 버려진 노인과 아이들, 노숙자 등등…. 사회의 보살핌이 없으면 이들은 오늘의 삶을 보장 받지 못한다. 그러나 장기 불황은 이들에게 더 혹독한 겨울을 예고하고 있다. 구세군은 안간힘을 다하지만 자선냄비 무게는 여전히 가볍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에 '이태백'까지 등장한 탓에 극빈층이 느끼는 '체감 온정'은 영하권을 맴돌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영등포 쪽방동네 너머 여의도 정치권은 쪽방동네의 한기는 모른 채 제 식판에 음식을 더 얹으려 싸움에 열중하고 있다. 기업을 협박해 쪽방동네 사람들을 구호하고도 남을 만큼의 불법자금을 받아 쓴 게 엊그제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텐데도 벌써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크리스마스다. 하루만이라도 손해 보듯, 모자란 듯 살아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 사회의 부족했던 곳이 어느 때보다 흘러 넘치지 않을까.
황 상 진 사회1부 차장대우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