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12월25일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이 날 오전 9시50분께 서울 충무로의 대연각호텔에서 화재가 나 163명이 죽고 63명이 데고 다치는 참변이 일어났다. 이 참사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화재로 최대의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었다. 존 길러민 감독의 유명한 재난 영화 '타워링'(1974)에 제재를 제공한 것이 대연각호텔 화재라는 말도 있다.대연각호텔은 21층 건물로 당시 서울의 최고급 호텔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1층 커피숍에서 프로판가스가 폭발하면서 치솟은 불길은 삽시간에 21층까지 번지며 건물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뒤덮었다. 데거나 질식해 죽은 사람들 말고도 불을 피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죽은 사람들도 수두룩했다. 불은 7시간 반 만에야 꺼졌다. 당시 소방 당국은 미군 소방차의 지원까지 받으며 진화에 나섰지만, 겨울 바람이 거세 불길 잡기가 힘들었던 데다 호텔 건물에 스프링클러 따위의 소방 시설이 거의 돼 있지 않아 인명 피해를 사뭇 키웠다. 이 참혹한 장면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그대로 전국에 전달되면서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대형 건물에서는 스프링클러 설비를 갖추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그러나 피할 수 있었던 대형 화재는 그 뒤로도 끊임없이 일어났다. 대연각 호텔 화재 이후 몇 해 사이에만도 지금의 롯데백화점 청량리점 자리에 있던 대왕코너가 거푸 불길에 휩싸였다. 새 천년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9년에는 경기도 화성의 씨랜드와 인천의 한 호프집에서 어처구니 없는 화재가 연이어 나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월의 대구 지하철 참사는 돌이켜 보기도 끔찍스럽다. 불의 발견은 인류 역사의 획기적 사건 가운데 하나지만, 이 불은 가장 냉혹한 수업을 통해 방심이 악덕이라는 것을 인간에게 일깨운다.
고종석
/논설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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