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추진중인 정치개혁안을 놓고 여야와 시민단체간에 '개악'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시민단체는 "의원들의 밥그릇 챙기기와 돈 선거를 유지하려는 개악적 조치"라고 비판했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3당은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제시한 개혁안을 대폭 수용한 현실적 대안으로 현행에 비하면 큰 진전"이라고 반박하고 있다.가장 첨예한 쟁점은 지역구 의원수 증원. 열린우리당과 시민단체들은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지역구를 늘렸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야당은 "지역구의원 수를 줄이면 농촌만 피해를 보게 되며, 전국구는 간접선거 논란과 후보 자질 검증 등의 문제가 있다"고 맞선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여야의 현역의원 보호도 문제지만 '비례대표 증원=개혁'이라는 도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결국 지역기반을 가진 야당과, 이 부분에 약점이 있는 여권과의 이해 충돌이 논쟁의 근본 원인이라는 시각이 일리 있다.
이와 달리, 선관위의 단속권 제한 문제는 정치권이 '자기보호'를 위해 월권을 했다는 지적이 단연 우세하다. 계좌추적요청권 등 선관위 권한 강화안이 거부된 것은 차치하더라도 자료제출요구권 등 기존 권한까지 삭제하려 한 것은 지나쳤다는 것이다.
고액 기부자 명단은 공개하면서 1회 100만원, 연간 500만원 초과자만 영수증을 제출토록 한 것도 음성자금의 근본적인 차단을 위해선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수증을 소액으로 쪼개 감시망을 피해가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의정보고회와 당원집회 금지기간을 선거일 전 90일(범개협안)에서 30일로 후퇴시킨 것도 현역의원들의 기득권 지키기로 비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의원들은 "명단 공개를 금지하고 선거운동 전까지 의정보고를 할 수 있는 현 제도보다는 훨씬 개선됐다"고 항변한다.
당원 행사에서의 식사·교통편 제공 및 의원들의 축·부의금 제공 금지안이 거부된 것도 논란거리다. 범개협은 "'돈먹는 하마'인 지구당은 없애자며 왜 돈 안 쓰는 데는 반대하느냐"고 꼬집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식사·교통편도 마련해 놓지 않으면 누가 당 행사에 오느냐" "경조사에 안가면 인간적으로 매장된다"는 의원들의 하소연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기습상정 효력판단 유보" 선거구획정위, 정개특위에 도로 공 넘겨
국회 선거구 획정위원회가 24일 야3당이 전날 정개특위에서 기습 상정한 선거법 개정안의 법적 효력에 대해 판단을 유보, 개정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김성기 획정위원장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획정위는 정개특위의 선거구 획정 가이드라인 상정 및 법적 효력 여부를 해결할 권한도 없고, 끼고 싶지도 않다"고 밝혔다. 야3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중립을 선언한 것으로 들리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당 손을 들어준 셈이다. 획정위는 정개특위가 26일까지 인구상·하한선, 지역구 의원수, 인구산정 시점 등을 의결 등으로 명확히 결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위원 전원이 사퇴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공은 다시 정개특위로 넘어왔다. 하지만 여야가 이날 전날의 선거법 기습 상정과 우리당의 물리력 행사를 둘러싸고 격렬한 공방전을 벌인 것에 비춰보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 "야3당이 정치 개혁이 아닌 개악을 한다는 터무니 없는 매도와, 열린우리당이 폭력으로 국회를 짓밟는 사태에 대해 당혹스럽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시민단체 등이 의원수 증가를 반대할 경우 의원정수 당론을 289명에서 현행 273명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다시 변경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열린우리당처럼 소수가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선거법 개정 합의는 어렵다"고 우리당을 몰아세웠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이 국민이 직접 선택한 지역구 의원보다 비례대표 의원을 더 늘리려는 것은 국민 정서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정개특위 민주당 간사인 박주선 의원은 우리당이 선거구 기준일을 올해 3월31일로 한 것을 문제 삼은 데 대해 "이미 4당 총무들이 합의한 사항이고, 선거법에도 획정안을 1년 전에 내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면서 "절대 특정인을 위한 게리맨더링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반면, 열린우리당 김원기 의장은 "한나라·민주당이 분권형 대통령제를 내걸고 세력을 합치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며 "민주당 박상천 전 대표의 지역구인 전남 고흥 인구가 4월 이후엔 하한선인 10만이 넘지 않아 야3당이 인구 기준 시점을 3월말로 정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신기남 의원은 "야3당의 정개특위 소위 위원들이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돼 모였다 하면 선관위,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 시민단체에 대한 험담에 급급했다"며 회의 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나 야3당 의원들은 "오히려 신 의원이 소위에서 표결 처리에 합의해 놓고 말을 바꿨다"며 회의록을 증거로 제시했다.
/최기수기자 mounta@hk.co.kr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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