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스타와 대중의 관계는 변덕스러운 연인 사이를 닮았다. 첫 눈에 반해 마음을 온통 빼앗기는가 하면, 죽고 못살 듯하다가 하루 아침에 냉정하게 돌아서기도 한다. 어느 해보다 스타의 부침이 심했던 2003년. 대중문화 스타들의 인기 지형도를 유형별로 정리한다. /대중문화팀자고 일어나니 "나, 스타"
'스타 탄생'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뭐니 뭐니 해도 '하루 아침에'다. 하늘의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는 어디가 달라도 다른 법. 어느날 천부적 능력이 발견돼 (별 노력 없이 깔끔하게)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다'는 스토리는 가장 극적이고 멋있다.
"자고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더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스타는 김제동. 대구 지역에서 이벤트 MC로 활약한 그는 윤도현과의 친분으로 TV에 진출, 감칠맛 나는 입담 하나로 스타덤에 올랐다. 올 초 '폭소클럽'(KBS2), '윤도현의 러브레터'(KBS2)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만 해도 공채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연료 대신 상품권을 받았고, 신촌의 여관을 전전해야 했던 그는 어느새 방송사 개편 때 '영입 1순위'로 꼽히는 시청률 보증 MC로 우뚝 섰다. 그의 이름 은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톱10에 들었고, 신문에서 주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의 '생활밀착형' 개그는 오디오 파일로 제작돼 인터넷을 떠돌았다.
끊임 없이 상대방을 '갈구고', 자학형 개그를 선보이면서도 "사랑은 택시와 같은 것. 함께 걸어온 길만큼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와 같이 따뜻한 '명언'을 던지는 진솔한 모습이 매력이다.
박정아도 2003년이 낳은 벼락 스타. 올 초만 해도 지명도가 낮은 걸그룹 '쥬얼리'의 리더에 불과했던 그는 휴대폰 광고로 눈길을 끌고 '타임머신'(MBC) MC로 연착륙하더니 '한밤의 TV연예'(SBS) MC까지 꿰어차는 등 종횡무진이다. 예쁜 척하지 않는 털털함이 그의 매력.
세븐은 귀엽고 사랑스러운 막내동생 이미지로 10·20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인기를 얻으며 신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단순한 가수라기보다는 힐리스를 타고 '럭셔리한' 스타일을 중시하는 등 요즘 젊은이의 취향을 잘 담아냈다.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 출연했을 때 상대역이 김희선조차 시사회 장에서 "저와 같이 출연한…이름이 뭐였더라" 할 정도로 무명이었던 김민준도 '다모'(MBC) 한 편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여린 꽃미남에 질린 이들에게 가슴 깊은 곳에 뜨거운 사랑을 간직한 강한 남자 이미지로 다가왔다. 그 밖에 이효리, 문소리는 올해 '확실한 1등' 자리에 올랐다. 10등에서 2등으로 올라서는 것보다 2등 하다가 1등에 오르는 게 더 힘든 법이다.
"좋았지, 작년까지는."
올 한 해가 '악몽' 같았을 스타도 적지 않다. 인기 정상을 달렸던 스타일수록 갑작스러운 '추락'의 현기증은 심했을 터이다. 이들의 쇠락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보다 스타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스타의 인기가 결코 오래 갈 수 없음을 보여줬다.
조성모는 '밀리언셀러 가수'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로 올 한 해는 계속 꼬였다. 스타 제조기 GM이 키운 그는 43억원을 받고 혜성미디어로 옮겼지만, 음반 판매 부진으로 혜성미디어는 부도가 났다. 그는 "나만의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새 매니저인 형과의 갈등도 커져서 결별한 상태다. 11월에는 중국 난닝(南寧)에서 열린 국제가요제에 참석했다가 주최측과 갈등을 빚어 공연을 취소하고 귀국, 거액을 물어야 하는 위기를 맞는 등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물론 5집 앨범이 39만장이나 팔려 순위로 보면 2위, 골든디스크 대상도 타서 체면치레는 했다. 하지만 '발라드의 황태자' 혹은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던 때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이름만으로 세상의 눈길을 끌어당겼던 시절이 꿈속의 일처럼 여겨질 듯하다.
깜찍한 이미지로 지난해 최고의 인기를 누린 장나라.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SBS)로 연기자로서의 가능성도 인정 받았지만, 올 들어 영화 '오! 해피데이'의 흥행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인기가 급락했다. 인기 비결이던 '깜찍 발랄 엽기' 코드를 너무 밀고 나간 탓일까. '귀여운 척 그만 하라'는 안티 팬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아버지 주호성씨가 딸의 연예활동에 사사건건 간섭한 것이 '파파 걸'이라는 인상을 남기며 안티 팬을 더욱 자극했다. 3집 앨범도 "가창력이 달린다"는 혹평을 받았다.
김희선은 나오는 영화마다 줄줄이 흥행에서 참패했지만, TV에서만큼은 '흥행 보증수표'로 통했다. 그러나 4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 '요조숙녀'(SBS)가 시청률 10%대에 그쳐 '드라마 신화'마저 깨졌다. 방송가의 한 인사는 "김희선도 얼굴 예쁜 것 하나로 미숙한 연기 등 모든 걸 용서받던 나이는 지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11월 한 인터넷사이트가 실시한 연예인 호감도 조사에서 김희선은 비선호 연예인 1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해 SBS 연기대상까지 안겨준 '야인시대'의 청년 김두한 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안재모도 추락을 맛보았다. '야인 이미지'를 살려 '남자의 향기'(MBC)의 조폭 두목 혁수, '그녀는 짱!'(KBS2)의 넘버 3 동기 역 등 계속 '주먹'으로 승부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지난해 '가문의 영광'으로 최고의 코믹 여배우에 오른 김정은도 변신을 꾀한 멜로영화 '나비', 코믹으로 복귀한 '불어라 봄바람'이 잇따라 흥행에 참패해 "아! 옛날이여"를 외쳐야 했다.
나도 떴느냐?
양미경 박윤배 백윤식 등 중견 연기자들이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사십 줄에 들어서면 한물 간 퇴물 취급하는 연예계 풍토에서 보란 듯이 떠 오른 이들의 맹활약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한 시인의 경구(警句)를 떠올리게 한다.
'대장금'(MBC)에서 한 상궁으로 열연한 양미경(42)은 데뷔 20년 만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한 상궁과 장금의 관계는 가장 이상적인 여성관계 모델로 연구 대상이 됐고, 인터넷에서는 한 상궁 살리기 운동이 벌어졌다. 또 그가 MBC 연기대상 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하자 후보를 다시 선정하라는 사이버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응삼이' 박윤배(51)의 삶이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을까. 올들어 각종 TV 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추더니, 급기야 30년 전 증명사진 한 컷으로 '원조 얼짱'에 등극했다. 그의 인기는 누군가를 희화화하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네티즌의 장난기에서 비롯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촌스럽지만 순박한 그의 외모는 '얼짱' 일색인 연예계에서 분명 나름대로의 상품성이 있다. 현재 두 편의 영화에 출연 중이고, 내년에 방송될 SBS '토지'에도 캐스팅됐다.
영화 '지구를 지켜라'에서 삭발한 머리에 빨간 사각 팬티와 레이스 달린 속옷만 입고 등장한 백윤식(53)의 활약도 놀라웠다. 잘 나가던 미남 탤런트 시절의 위신은 버렸지만, 데뷔작인 이 영화로 그는 청룡영화제와 대한민국영화대상의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전인권(49)도 위성방송 CF 등에서 특유의 '사자머리'를 흔들며 인기를 모았다. 14년 만에 3집 '다시 이제부터'를 발표하고 라이브 공연도 잇따라 열면서 어느 해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데뷔 후 짧지 않은 무명 시절을 거친 젊은 연예인들의 스타 등극도 화제를 모았다. '옥탑방 고양이'(MBC)에서 뭇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한 김래원은 CF에서도 '바람둥이' 컨셉으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미숙한 연기 탓에 욕도 많이 먹었던 이서진은 '다모'(MBC)에서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대사 하나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꽃미남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여기저기 얼굴은 비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잘리고 만다고 해서 '개그계의 개업떡'이란 별명을 얻었던 개그맨 정준하는 '안 좋은 추억' 시리즈와 "두 번 죽이는 일" "편견을 버려" 등의 유행어를 인터넷 인기검색어에 올리며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이래도 안 볼래?
지난 3월 "나는 H양이 아니다"며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던 함소원. '몰카 비디오'의 희생자가 될 뻔한 그녀는 적극적으로 '벗기'를 시도했다. 연예인 누드 바람에 편승한 함소원은 순도 높은 노출로 이지현을 제치고 누드 시장에서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디오 파문을 누드 마케팅으로 뒤집은 그는 '몸으로 망한 여자는 몸으로 일어선다'는 가설을 만들어냈다. 성현아 역시 함소원보다 먼저 이 가설의 유효성을 입증한 케이스.
지난해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그는 유명 연예인으로서는 파격적인 누드집을 내 '시장 선점' 효과를 누렸고, 이어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 캐스팅되는 등 악재의 적극적 활용이 돋보였다. 백지영도 '성인전용 공연' 등을 추진하면서 섹시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함소원, 백지영 등은 '네거티브 섹스'의 이미지를 '포지티브 섹스'의 이미지로 전환했지만,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적잖다. 이 때문에 지상파 방송에서 폭 넓은 인기를 누리진 못하는 제한된 성공만을 거뒀다.
지난 대선 이후 정몽준 후보와 동반 추락한 김흥국은 요즘 각종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 "우크라 대학"(UCLA 대학을 잘못 읽은 것) 등 자기 비하형 유머를 날리며 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1970년대 스타일의 가발까지 쓰는 등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애쓰고 있으나 '호랑나비' 시절의 인기를 회복하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살 빼기 파문을 일으킨 이영자 역시 '또순이' 이미지로 재기를 노리고 있으나, 아직은 안간힘에 그치고 있다.
/대중문화팀
● 네티즌 선정 최악 연예인
'베스트(Best)가 있으면 워스트(Worst)도 있다!' 방송사 등이 앞을 다퉈 여는 각종 시상식에 얼굴을 내미느라 스타들의 발길이 바빠진 연말, 한 켠에서는 최악의 연예인을 뽑는 행사도 열린다. 조촐하지만, 그 얼굴이 그 얼굴인 판박이 시상식보다는 눈길이 가는 행사다.
회원 77만5,000여명을 거느린 연예인 안티 카페 '연예인?! 이제 그들을 말한다'(연이말·cafe.daum.net/nowwetalk)는 가수 연기자 개그맨 등 3개 부문에서 '자질이부족하거나 자질도 부족한데 노력도 안 한' 최악의 연예인을 뽑는 투표를 실시했다.
15일 투표 마감 결과, 가수 부문은 이효리가 1위에 올랐다. 이유는 "노래 실력은 꽝! 오직 섹시!"로 요약된다. "언론의 효리 띄우기에 지쳤다"는 비판도 따랐다. god는 "재민이 덕에 컸지만 실력은 형편없다", 장나라는 "동요 수준의 노래에 귀여운 척만 한다"는 등의 이유로 2, 3위에 랭크됐다.
연기자 부문 1위는 '남부여 공주' 성유리로, "초등학생이 국어책 읽는 듯한 대사에 표정도 어색하다"는 게 이유. 뒤를 이은 손예진은 "가식 덩어리" "역시 국어책 읽기", 박한별은 "연기는 둘째 치고 끼가 없다"는 등의 지적을 받았다. 개그맨 부문은 '우비소녀' 김다래("귀여운 척에 맨날 똑같은 개그"), 강호동("말투가 험하고 힘 자랑만 한다"), '옥동자' 정종철("자기비하, 얼굴로 우려먹는 더티한 개그")이 1∼3위의 불명예를 안았다.
인터넷 매거진 켐알에이넷(www.kmra.net)도 가수를 대상으로 '최악의 딴따라'를 선정하고 있다. 올해로 3회 째. 네티즌 1만2,534명의 추천을 받아 12개 부문 후보를 선정했고, 내년 1월10일까지 네티즌 투표(60%)와 전문가 평가(40%)를 거쳐 '수상자'를 뽑는다. 문희준은 최악의 가수, 앨범 등 9개, 이효리는 최악의 가수, 노래 등 6개 부문에 올라 각각 남녀 선두에 서 있다. 24일 현재 투표 상황을 보면 최악의 가수는 문희준(44%) 이효리(21%) 함소원(21%), 최악의 노래는 문희준의 'G선상의 아리아'(56%), 이효리의 '10 minutes'(24%), 함소원의 'Best Love'(13%) 순이다.
이 밖에 대종상 영화제에 맞춰 최악의 남녀 배우를 뽑는 '레디스톱 영화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문화계에 대한 '딴지 걸기'가 시도되고 있다. 선정 과정에 편견과 오해가 없지 않지만 특정 연예인을 무조건 공격하는 '더티 안티'와는 다르다. 연이말은 "(연예인을) 좋아할 권리가 있다면 비판할 권리도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이제 문화 소비자들은 스타들이 보여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던 데서 벗어나 대중문화 구석구석에 참여해 훈수를 두는 '프로슈머'(Producer+Consumer)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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