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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서귀포 서흥·동흥동 흙담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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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숲 이야기/서귀포 서흥·동흥동 흙담소나무

입력
2003.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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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끝자락인 12월, 제주 서귀포시 서흥동·동흥동의 마을숲을 찾았다. 제주도 관광지도를 빼곡히 채운 명소들이 많지만 의외로 사람들 눈에 띠지 않는 아름다운 숲도 많다.만약 나무의 신이 있다면 머물 법한 비자림(천연기념물 제374호)은 제쳐두고라도, 제주시 한 복판에 현대식 건물로 둘러싸인 삼성혈 숲은 탐라국의 시조가 탄생한 숲으로 건국신화에 걸맞는 신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이끼와 겨우살이로 뒤덮인 수백년 묵은 녹나무, 조록나무 등과 가슴둘레 1m에 달하는 해송이 감싸고 있는 삼성혈은 이 숲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삼성혈 숲이 제주도의 숲이라면, 흙담소나무(土墻松)는 서흥동·동흥동의 마을숲이다. 마을숲이라 하면 흔히 마을 들머리 언덕에 수십에서 수백 그루의 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있거나 바람이나 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물길이나 바람 방향에 맞춰 큰 띠 모양으로 길게 조성한 숲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마을숲은 얼핏 보면 가로수로 잘못 생각할 만큼 길을 따라 한 줄로 길게 조성되어 있다. 서흥동과 동흥동을 구분하는 16번 도로를 가로질러 서흥동에 66그루, 동흥동에 22그루 등 90년생 전후의 해송이 어른 무릎 높이의 흙담 위에 길게 심겨져 있다. 그렇다면 이 마을에는 왜 이렇게 독특한 마을숲이 형성된 것일까?

이 마을은 고려 초에 세워진 유서 깊은 곳으로, 서기 1300년경 홍로현청이 설치될 정도로 문물의 중심지였다. 마을 주변이 산으로 둘러있어 화로와 같은 모습을 지녔다 해서 이 고장 선인들은 홍로(烘爐)라 불렀으며, 지금의 서귀포시 방향인 남쪽으로 기운이 허해 재앙이 빈번히 일어난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금과 같은 숲을 조성하게 됐다.

풍수지리설의 비보(裨補) 개념에 따라 남쪽의 허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평지 위에 일부러 흙담을 쌓고 그 위에 해송을 심었다. 흙담소나무의 조성을 보여주는 당시 기록에 따르면, 1910년 봄에 당시 구장이던 고진사가 주민을 동원하여 예전의 흙담을 수축하고 주위에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동흥동의 현만옥(85) 할머니는 당시 청년들 한 사람이 한 그루씩 소나무를 심었다는 말을 어른께 들었다고 하니, 그 당시 청년들의 수고로움이 지금의 훌륭한 마을숲을 형성한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러나 마을이 커지고 사람과 물자를 나르는 더 넓은 길이 필요하게 되면서 숲의 운명도 위협받게 됐다. 서흥동 흙담소나무는 바로 옆에 들어앉은 아파트와 학교로 인해 답답한 느낌을 준다. 반대편 동흥동 흙담소나무는 아파트와 같은 인위적인 위협은 없지만 최근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자람이 부실해 보였다.

그나마 지금과 같이 흙담소나무가 보호된 것은 1990년 서흥동 청년들이 80여년 전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훼손되는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생육 상태가 좋은 소나무를 보호책(356m)으로 막고 관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나아지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서흥동·동흥동의 흙담소나무 마을숲은 2002년 아름다운 마을숲(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나는 아름답고 유서 깊은 자연환경을 대하면 그 숲을 지키고 가꾸어 온 사람들을 먼저 떠올린다. 수백, 수천 년간 보존된 숲이 있다는 것은 그 민족과 마을이 무수한 유혹과 어려움을 지혜롭게 이겨냈다는 무언의 증거이다. 그런 면에서 서흥동·동흥동의 주민들은 흙담소나무의 보존과 지역개발이라는 어려운 시험을 잘 통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도 같은 과제로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때도 지금과 같이 지혜로운 선택이 있기를 바란다.

배재수 임업연구원박사 forestory@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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