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동에서는 희비의 쌍곡선을 보여주는 두개의 사건이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 하나는 '바그다드의 도살자'로 악명을 떨치던 사담 후세인의 비극적 말로다. 다른 하나는 '아랍의 미치광이'로 인근 아랍국 지도자들로부터도 경원시되어 오던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가다피의 충격적 변신이다. 12월 19일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 국제적 각광을 받고 있는 가다피와 지하 감방에서 전범재판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후세인은 큰 대조를 이룬다.그러나 실제로 이 둘은 비슷한 점이 더 많다. 이들은 아랍민족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인민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젊은 나이에 정권을 장악했지만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장기독재로 일관해 왔다. 후세인은 1978년 바트당을 장악한 후 25년 동안을, 그리고 가다피는 69년 군사 쿠데타에 성공한 후 34년 동안을 강압정치로 장기 집권해 왔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 정권을 세습하고자 했던 점에서도 이 둘은 유사하다.
공격적 대외정책을 국내 통치의 수단으로 악용해왔다는 점에서도 이 둘은 비슷하다. 국내정치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이들은 주변 국가나 미국에 대해 도발적 행태를 보여왔다. 후세인의 경우, 8년에 걸친 이란과의 전쟁, 90년 쿠웨이트 침공과 걸프전, 그리고 2003년 미국과의 전쟁 모두 체제유지를 위한 정책선택이었다. 가다피도 집권이후 이집트, 수단, 차드 등과 세 차례의 전쟁을 치렀고 이슬람 테러 조직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공여한 바 있는데 이 역시 체제 유지라는 국내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이라크와 리비아는 인구 규모에 비해 석유 매장량이 매우 풍부한 국가들이다. 석유수입을 현금으로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어도 될 만큼 풍요로운 나라가 이들의 통치 기간에 경제가 파탄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이 극도로 피폐해졌다는 점에서도 유사점이 크다. 무모한 전쟁,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경직성, 그리고 서방측의 경제제재가 이라크와 리비아를 저개발 국가의 나락으로 추락케 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후세인과 가다피 모두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아랍, 이슬람권에서의 패권적 위상을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대망상증 환자였다. 그러나 최종 선택은 달랐다. 후세인은 미국과의 저항을 계속 주도하다 처량한 전쟁 포로의 신세로 전락한 반면, 가다피는 결정적 순간에 대량살상무기 포기라는 실용적 선택을 함으로써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고 있다.
물론 미국 측이 주장하는 대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검증 가능한 해체가 있을 때까지는 리비아가 정상국가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이번 포기선언의 배후에 대량살상무기만으로 그의 체제안보를 담보할 수 없다는 가다피의 현실인식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핵과 화생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함은 물론 핵확산 방지조약에도 가입함과 동시에 국제사찰단의 사찰을 전향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한 그의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이번 가다피의 결단은 북한에 주는 함의가 크다. 그것은 대량살상무기 추구가 체제와 국가의 안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를 포기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정상국가로 변화하는 것만이 국가와 체제안보를 동시에 보장해 주는 가장 실용적 대안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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