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는 2003년 해가 다 저무는 시점에서 한 가닥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3년을 끌어오던 미술품 양도세 부과법안이 1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완전 폐기된 것. 화랑협회, 고미술협회 등 14개 미술 단체가 연대, 가두서명운동과 궐기대회에 나서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서명을 받아내는 등 활발하게 국회를 설득한 결과였다.하지만 몇 년 째 이어지고 있는 미술시장의 바닥 모를 '침체'와 '불황'은 올 한 해도 미술계를 우울하게 했다.
웬만큼 이름 있는 작가가 화랑 전시를 해도 작품 한 두 점 팔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였고, 소규모 사립 미술관은 운영난에 하나 둘 문을 닫아야 했다. 미술경제지를 표방하고 10월 창간한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국내 미술품 가격이 정점에 올랐던 1991, 92년 이후 작품가가 오른 작가는 사실상 전무했고 그나마 가격이 폭락한 97년 IMF 위기 때부터 따져도 작품가가 오른 작가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하종현 서울시립미술관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공공미술관의 인력 전문화 문제가 커다란 쟁점이 됐다. 민중미술계의 지도적 인물이던 김윤수 관장은 취임 후 국립현대미술관의 학예직 인력을 두 배 이상 늘리고, 미술관 위치도 접근성이 용이한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개혁적 구상을 밝혔지만 그 실현은 여전히 난망이다.
시장 침체를 반영하듯 명성에 기댄 외국 작가들의 전시가 그나마 화제가 된 한 해였다. 2월 일본 작가 야요이 구사마를 비롯해 빌 비올라, 게르하르트 리히터, 요셉 보이스,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전이 잇따랐다. 가장 큰 대중적 관심을 끈 작가는 6월 로댕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팝스타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였다.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 전은 20만 가까운 관람객을 모아 흥행 기록을 세웠다. 피카소 판화전과 샤갈 작품전도 많은 관객이 찾았다.
국내 작가로는 장우성, 이우환, 이종상, 김종학, 이강소, 서도호 등 원로부터 신예까지의 무게 있는 전시가 알차게 이어졌다. 현역 최고령 작가인 91세의 장우성 화백은 회고록 '화단풍상칠십년'을 출간한 데 이어 중국 작가 리커란과 2인전을 열어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민중 작가 신학철도 12년 만에 개인전을 열었다. 조각가 권진규의 30주기전을 비롯해 유영국, 황창배, 차학경 등 작고 작가들의 작품전도 잇따랐다.
50회 베니스비엔날레와 올해 처음 열린 베이징비엔날레 등 국제 미술행사는 물론 시카고, 바젤, 상하이 등 해외 아트페어에도 화랑들이 의욕적으로 참가해 한국 현대미술과 젊은 작가들을 알리려 한 것도 특기할 만했다.
경기 용인시 기흥읍에 2005년 건립될 예정인 백남준미술관이 건축설계를 국제 공모한 것도 화제였다. 박수근의 유화 '閑日(한일)'이 3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3억원에 낙찰돼 한국 현대회화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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