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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세모의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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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세모의 동시

입력
2003.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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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다. 한 해가 남기는 그림자가 쓸쓸하도록 길다. 올해도 많은 문화계 신인이 탄생하고 원로는 유명을 달리했다. 그 중 아동문학계의 빈 자리는 각별해 보인다. 윤석중 이오덕씨가 세상을 떴으니, 상실감이 어느 해보다도 진하다. 방정환 이래 아동문학에서 그들보다 큰 이름을 찾기는 힘들다. 윤씨가 맑고 곱고 씩씩한 어린이 노래를 만들어 아동문학의 모더니즘을 이끌었다면, 이씨는 농촌 어린이를 등장시켜 생생한 현실을 호흡하게 하는 리얼리즘을 뿌리 내리게 했다. 두 거목 곁에, 또 한 사람 이문구씨가 서야 할 것이다. 소설이 본령인 그가 쇠잔해지는 육신을 이끌고 도달한 언덕이 동시였다.■ 윤석중씨가 아끼던 자작시 '먼길'은 다정하고 애틋하다. <아기가 잠드는 걸 보고 가려고 아빠는 머리맡에 앉아 계시고. 아빠가 가시는 자려고 아기는 말똥말똥 잠을 안 자고.> 이오덕씨의 초기시 '포플러 1'에는 푸른 기상이 넘실거린다. <눈부신 수만의 비늘을 단 물고기 호수에 잉어가 꼬리치듯 하늘에는 포플러가 살아간다. 파도소리보다 더 찬란한 호흡으로 흐느끼며 헤엄치는 그 곁에 내가 서면 …> 이문구씨는 손자 손녀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서 동시를 썼다. <산에는 산새 들에는 들새 물에는 물새 들고나는 새 하고많아도 울음소리 예쁜 새는 열에 하나가 드물지 …> ('새' 중에서)

■ 그들은 다른 길을 걸었다. 글 쓰기와 삶의 궤적이 차이가 있듯이, 그들을 보내는 세상의 방식도 달랐다. 새싹회장·한국방송협회장·방송위원장 등을 지낸 윤씨는 3·1문화상·예술원상·막사이사이상 등을 수상했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업적에 걸맞게 융숭한 대접을 받았으니, 제도권 아동문학가의 복된 일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일보문학상·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보수·진보를 아우르는 문단활동을 편 이문구씨에게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 이오덕씨는 기교에 치우친 아동문학을 냉철하게 비판하면서, 가난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농촌어린이의 꾸밈없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육성적 발언은 진실 자체였고 아동문학의 큰 줄기를 바꿔놓았으나, 역대 군사정부는 그를 불온한 문학가처럼 위험시했다. 그는 세상을 뜨면서 "외부에 알리지 말고 장례가 끝난 뒤 '즐겁게 떠났다'고만 전하라"고 유언했다. 조촐한 가족장으로 아들 집 뒷산에 묻혔다. 개혁을 표방하는 참여정부 역시 그의 죽음에 무심했다. 6권 분량의 시집 원고와, 아동문학에의 순교자 같이 크고 순수한 이미지만 남았다.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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