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렇게 에로틱하진 않았던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사진)에서 그래도 가장 에로틱한 캐릭터가 있었다면 장항선이 맡은 에로 비디오 감독 캐릭터다(영화사 이름은 '핑클 프로덕션'). "1년에 단 한 번 섹스를 해야 한다면 바로 크리스마스에 해야 한다"고 설파하는 그는 엄동설한에 배우들을 이끌고 동네 야산에서 작품 활동에 전념한다. 아무리 허섭해 보이는 영화라도 창작의 순간만큼은 숭고한 법. 알몸으로 열연하는 배우들과 예술혼에 불탄 연출자의 눈빛은, 어쩌면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진지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자주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 에로 영화(혹은 포르노그래피)를 만드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불후의 명작'의 주인공은 에로 영화 감독.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만들고 싶은 '불후의 명작'과 정작 자신이 만들고 있는 비디오 에로 영화 사이에서 갈등한다. '박하사탕'을 패러디하며 두 팔을 번쩍 들고 "나 다시 하고 싶어!"라고 외치는 제작자 앞에서 감독은 좌절하고 만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에로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희화된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지만, 패턴 속에서 정형화되는 그들의 캐릭터는 사실과는 동떨어진 측면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에로 영화 현장은 무슨 별천지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에선 경찰과 스님마저 그곳을 엿보고, 쫓고 쫓기는 해프닝을 벌인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현장은 열악함과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게다가 충무로 못지않은 시장의 압력은 그들을 두 번 죽인다.
에로 영화에 대한 조금은 다른 관점도 있다. 굳이 외국 영화를 끌어들여 조금은 미안하지만 '부기 나이트' 같은 영화가 포르노 촬영 현장을 다루는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이 영화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 포르노 산업의 모습을 미국 사회의 변화와 맞물리며, '신이 내린 거시기'를 지닌 주인공의 쾌락과 좌절을 보여준다. "난 단지 흥분하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들이 앉은 자리에서 싸고 뭉개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연출자의 철학은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리고, 한국 개봉 땐 검은 막대로 처리되었지만 33센티미터짜리 물건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슬프고 처량한 느낌마저 준다.
'색정남녀'는 에로 영화라는 조금 특별한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사랑을, 야할 때는 무척이나 감각적으로, 진지할 땐 꽤나 섬세한 감정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문제는 에로 영화라는 소재의 선정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의 독특함과 (진부한 표현이지만) '감동'이다. 그건 에로 영화를 보는 감동과는 조금 다른, 에로에 대해 새롭게 각색된 감동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해피 에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에로 상식 하나. 영화 속 에로 배우로 나오는 남자는 이쪽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근육파 배우다. 이름은 양대선. 늦게나마 축하의 말을 전한다.
/김형석·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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