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2일 오전 예정돼 있던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취소하고 불교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 등을 만나기 위해 합천 해인사를 찾았다. 서울 외곽순환 고속도로 노선 중 사패산 터널 건설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나서 연내에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파격적인 방문이었다.노 대통령은 법전 스님,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과 오찬을 함께 하며 북한산 관통을 위한 사패산 터널 공사를 강행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불교계에 대한 자신의 대선공약을 지킬 수 없다는 점을 전달한 것이다. 공사지연이 너무 장기화돼 절충안으로 제시했던 '공론조사'도 할 수 없게 됐다는 점도 솔직하게 밝혔다.
이에 대해 법전 종정은 총무원장 등에게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서 국정수행에 잘 협력해 주도록 하라"고 말함으로써 터널 공사 반대를 고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의 수장이 불교계 지도자를 방문함으로써 문제의 실마리가 풀린 셈이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깜짝 방문'에 대해 "조계종측과 계속 협의를 해오던 끝에 일정이 잡힌 것이지 돌연한 방문은 아니다"고 말했다. 불교계 설득을 위해 그만큼 공을 들여 왔다는 얘기다. 그 동안 청와대 내에선 정무수석실이 사패산 터널 건설에 반대해 왔으나 이번에 민정수석실이 노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전 종정은 이날 오찬에 앞서 "오늘이 동지인데 동짓날은 바깥에서 세는 것이 좋다는 말이 있다"고 덕담을 건넸고 노 대통령은 "마침 날까지 좋아 저한테도 행운인 것 같다"고 화답하기도 했다.
터널 건설 수용을 시사한 법전 종정의 뜻이 온전히 관철될지 여부에 대해선 환경단체의 움직임, 불교계 내부의 의견수렴 등 변수가 남아 있다. 그러나 취임 이후 원칙 없는 대응으로 국책사업 모두가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노 대통령으로선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와 함께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현안 해결의 현장에 직접 나타나는 일을 반복하는 게 옳은 일이냐는 논란이 새로 야기되고 있다.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스타일이 오히려 갈등을 첨예화할 위험을 안고 있는 '도박 행정'이 아니냐는 것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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