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나는 가끔 그 꿈을 꾼다. 대사를 잊어버리는,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그런 꿈이다. 극장에 가긴 갔는데 무슨 연극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대본도 의상도 찾을 수 없고, 나하고 같이 연극하는 배우들은 다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할 걸 찾아내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생각나는 게 없다. 무대감독은 나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극장이 적기나 한가? 세종문화회관만큼 큰 극장에 관객들은 자리를 가득 메우고 웅성거리고 있고, 조명은 있는 대로 번쩍거리고, 그 열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정작 나는 아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아무것도. 그리고 무대 감독에게 등을 떠밀려 무대 중앙에 나 혼자 내동댕이쳐졌을 때의 그 황당하고 막막함이라니. 아, 그리하여 제대로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 초췌한 발음과, 발이 뜻대로 놓여지지 않는 어설픈 걸음으로 휘청거리며 이건 꿈이야, 꿈이어야 해, 꿈이 아니라면 이럴 수 없어! 고함을 치는 그런 꿈.연극 배우에게 그 이상 어떤 절망이 또 있을까? 그건 아마 내가 죽는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을 그런 절망이다. 그리고 보니 무대에서 대사를 잃어 버린 적이 적지 않았다. 88년 '웬일이세요, 당신'의 이틀째 공연을 하던 날, 산울림 소극장 무대에서 순간적으로 대사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죽고 싶다' 따위의 사치스러운 감정이 아니었다. 어떤 말로도 치욕스러운 그 참담함을 설명할 수 없었다. 차라리 증발이라도 할 수 있었더라면. 무대에 서야 하는 숙명을 짊어진 배우들은 모두 그것을 안다.
'페드라'를 할 때도 그랬다. 마지막 장면에서 독약을 마신 채 죽음을 앞둔 페드라가 토해 내는 그 독백을 어떻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관객들의 눈은 모두 나에게로 쏠려 있는데 머리 속이 암흑천지로 변하고 줄줄 외웠던 대사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등에 식은 땀이 흘렀다. 땅 속으로 꺼질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이게 끝이구나. 내 제삿날이구나 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러고 보면 내 목숨이 참 여럿 있나 보다. 그 후로도 악몽은 계속 됐으니 말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로서 일본에 가서 '그 여자 억척어멈'을 공연할 때였다. 감기약을 먹고 공연하다가 갑자기 대사를 잊어버려 이미 한 말을 여러 차례 거듭했다. 공연이 끝나고 일본 배우들과 관계자들은 분장실로 찾아 와 멋있었다고 난리였지만 그 순간 왈칵 울음이 터졌다. 내 자신에게 너무 부끄러웠으니까.
대사 잊어버리는 악몽 말고도 나를 괴롭히는 꿈은 많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지각하는 꿈이다. 연극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데 길이 너무 막히는 꿈, 차에서 내릴 수도 없고 안 내릴 수도 없고, 조금 더 지름길로 간다고 간 길이 더욱 막히는 그 기가 차는 황당함. 두 번 다시 꾸고 싶지 않은 꿈을 왜 그토록 자주 꾸는지, 나는 무대에 그토록 자주 서 왔지만 강박증에는 여전히 무기력하다.
가끔은 대학에서 시험 보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학교를 그만 둔 지 30년이 됐는데도 대학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다. 시험을 치면서 한 문제도 답을 못 쓸 것 같은 불안함. 아마 학기말 시험 같은 것일 테지. 그 꿈에서 친구들은 언제나 착실히 시험준비를 해오고, 나는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다. 동아방송에 입사하느라 학교를 중간에 그만뒀기 때문일까. 내 갈 길이 바빠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는데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잠재의식에 남아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모양이다. 그 지긋지긋한 미련, 아쉬움. 언제나 그런 악몽에서 깨면 스스로 묻는다. 왜 나는 이루지 못한, 더 이상은 불가능한 것에 대해 결말을 짓지 못하나. '넌 무엇을 그리 만족하지 못하고 있니?' 가지 않은 길? 후회?' 난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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