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업무에만 매달리게 해주세요."조류독감 사태 주무부서인 농림부 가축방역과 관계자의 푸념이다. 그에 따르면 가축방역과 직원 12명 전원은 조류독감 사태 이후 며칠째 철야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정작 중요한 방역업무보다는, 조류독감 사태에 관심 많은 윗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보고서나 회의자료 마련에 귀중한 행정력이 낭비되고 있다"고 아쉬워 했다. 국가적 차원의 재해가 터질 때마다 반복되는 관료조직의 행태가 이번에도 재연되는 것이다.
관료조직의 구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안일한 판단에 따른 엉성한 초기대응으로 사태를 키우고, 문제가 확산된 뒤에야 뒤늦게 부산스러워지는 것 역시 이번에도 여전하다.
충남 천안과 경북 경주, 전남 나주에서 잇따라 신고가 접수된 21일 오전까지도 농림부 관계자들은 "대부분 음성 판정을 받을 것"이라며 낙관했다. 그러나 불과 하루만에 조류 독감은 전국을 휩쓸어 버렸다.
방역망에 구멍이 뚫려 천안 오리농장의 오염된 오리알이 경주와 나주로 독감을 옮기고 있는데도, 공무원들은 줄곧 청둥오리만을 탓했다. 또 사태 초기인 지난 15일에는 최초 발생한 농장의 닭만 처분하면 된다고 장담했으나, 이튿날 농림부 장관이 현지를 방문한 뒤에는 반경 3㎞이내 3만2,000마리를 전량 도살한다고 말을 바꿨다.
관료 조직은 22일 조류독감이 전국으로 퍼진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역대책본부장이 갑자기 농림부 차관으로 격상되고, 전국 차원의 방역대책을 가동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농민들은 56만마리의 닭과 오리, 231만개의 달걀과 오리알을 땅에 묻어야 했다. 관료들의 구태 속에 농가의 한숨만 깊어간다.
조철환 경제부 기자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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