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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선동열의 잊지못할 사람-나 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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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선동열의 잊지못할 사람-나 훈 씨

입력
2003.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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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의 선동열(42·프로야구 삼성 코치)은 설움을 곱씹고 있었다. 일본 진출 첫해 38경기서 5승1패3세이브 방어율 5.50의 참담한 성적을 보인 그는 '국보급 투수'의 명색에 어울리지 않게 주니치의 2군 훈련캠프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이다.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한 그는 어느 날 그 동안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자신이 '재미 있는 야구'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 깨달음 이후 선동열은 자신의 야구를 되찾았다. 동계훈련 중 신인들과 똑 같이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 냈고 이듬해 일본프로야구사에 빛나는 진기록을 남겼다.

선동열이 말하는 '재미 있는 야구'는 즐거운 마음으로 야구를 하는 것이다. 대학진학이나 생업 등 어떤 정해진 목적을 위해서 야구를 하면 몸에 무리가 가고 야구 자체가 고역이 되지만, 마치 놀이를 하는 것처럼 야구를 즐기면 몸에 힘도 안 들어가고 성적도 좋아진다는 것이다.

선동열에게 '재미 있는 야구'를 자연스럽게 가르쳐준 사람이 바로 나훈(61·사업·전 광주야구협회장)씨이다. 전남 송정 서초등학교 4학년이던 선동열은 아버지의 동네 후배였던 나씨가 자신의 가정교사를 맡게 됨으로써 인연을 맺었다. 광주일고에서 투수를 했던 나씨는 공부를 가르치는 틈틈이 집 앞 공터에서 선동렬과 함께 야구놀이를 했다. 자신도 모르게 야구에 익숙해진 선동열은 학교 특별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지도교사의 권유로 야구부가 있는 송정 동초등학교로 전학해 본격적인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야구를 시작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습니다. 당시 나 선생님과 야구를 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이자 즐거움이었습니다. 야구를 놀이처럼 즐겼기에 선수생활이 기뻤고, 야구에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선동열은 2년간 가정교사인 나씨에게 야구와 공부를 배웠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6학년 때 나씨가 야구부 코치로 부임해 왔고 이듬해 송정중학교 창단 팀 감독으로 가면서 선동열을 스카우트, 사제의 연을 맺게 됐다. "초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곧잘 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한 뒤에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가 힘들었죠. 어느 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왔습니다. 그런데 공부는 포기할 수 있어도 야구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씨의 권유와 부친의 허락으로 선동열은 인생의 방향을 야구선수로 정했다. 그리고 나씨의 조언에 따라 투수로 전업했고 그 해 소년체전서 우승도 이루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이를 끝으로 팀은 재정난으로 해체돼 선동열은 무등중학교로 옮겨 선수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나씨에게 배운 2년간의 선수생활은 평생의 밑거름이 됐다.

"나 선생님은 야구의 스승이자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가정교사 시절부터 그는 늘 엄격했습니다. 특히 '선수이기 전에 인간이 되라'고 가르쳤습니다. 선수시절엔 행여 수업을 빼 먹기라도 하면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 야구 코치로서 그는 일주일에 3일은 꼭 이론을 가르쳤고, 시험까지 보았습니다. 규칙에서부터 역사까지 나름대로 야구지식과 철학을 형성한 것도 이 때입니다."

나씨는 송정중학교를 떠난 뒤 사업을 했고 나름대로 성공해 훗날 광주야구협회장을 지냈다. 선동열의 광주일고 20년 선배이기도 한 그는 선동열이 프로생활을 할 때까지 조언과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희한한 인연입니다. 동네 아저씨이자 공부선생, 야구의 선배이자 스승으로 그 분은 나의 인생에 초석을 쌓아주었으니까요. 아마 그 분이 아니었다면 제 인생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승근 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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