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방송계의 최대 이슈는 KBS의 개혁성 강화였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KBS 사장 자리에 개혁적 인물이 앉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부터 KBS는 첨예한 보·혁 대결의 장이 됐다. 노 대통령의 측근인 서동구씨가 사장으로 취임했다가 노조의 반대로 8일 만에 사퇴했고, 뒤이어 정연주 전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이 4월 사장으로 취임했다.이후 KBS는 개혁적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미디어비평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 애썼으나 일부 프로그램은 공정성 논란도 불렀다. 10월 국정감사에서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씨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편향성을 둘러싸고 KBS와 한나라당의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고, 현재는 TV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로 격돌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영방송의 존재의미,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 미디어 상호비평의 의미 등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논의됐다. 주말 버라이어티쇼를 폐지하고 '비타민' '일요일은 101%' 등 공익적 오락프로그램을 대거 신설한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반면 이긍희 사장 체제의 MBC는 지난해와 달리 정치권과의 갈등 없이 디지털TV 전송방식 변경에 주력하는 등 평온한 한 해를 보냈다.
새로운 드라마 실험
상반기에는 '올인'(SBS), 하반기에는 '대장금'(MBC) 열풍이 거셌다. 두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50%를 넘었다. 장르를 넘나들고 금기를 깨는 새로운 시도도 많았다. '다모 폐인'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은 '다모'(MBC)는 조선시대 여형사라는 참신한 소재와 세련된 감각으로 퓨전사극 시대를 열었다. 수랏간 나인의 성공기를 궁중음식 등 진기한 볼거리와 버무린 '대장금'도 퓨전사극의 일종이다. '옥탑방 고양이'(MBC)는 혼전 동거라는 영역을 다뤄 화제가 됐다. '올인'은 대만에 사상 최고가인 13억원에 수출되는 등 올해도 한류 열풍은 이어졌다.
유료TV 시장의 약진
올해는 유료TV 시장이 본격화한 해로 기억될 만하다. IMF 이후 침체했던 케이블TV 업계는 6월을 기점으로 1,000만 가입자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개국한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는 11월 초 가입자 100만을 돌파했다. 둘을 합치면 전체 시청가구의 70%를 넘어선다.
유료TV는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지상파TV를 앞섰고 '시트콤 프렌즈' 등의 외화 시리즈와 이종격투기 등 틈새시장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다. 또 '서바이버'류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잇따라 직수입해 리얼리티 프로그램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TNS미디어코리아 조사에서 케이블 가입자들은 가장 재미있는 매체를 묻는 질문에 케이블TV(32.9%) 인터넷(28.2%) 지상파TV(23.4%) 잡지(2.3%) 라디오(2.0%) 신문(1.6%) 순으로 답했다.
디지털TV 전송방식 논란
지상파 디지털TV 전송방식 변경 논란은 올해도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계속됐다. 특히 연말까지로 시한이 정해져 있는 광역시 디지털 본방송 개시를 앞두고 갈등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유럽 방식으로의 변경을 주장하는 방송사 노조는 양 방식에 대한 비교시험 없이는 광역시 디지털 본방송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며 총파업까지 고려하고 있다.
반면 기존 미국 방식 고수 방침을 밝혀온 정보통신부는 산업계에 미치는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전환일정 중단은 불가능하며 방송사가 방송개시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디지털방송 허가를 취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방송사 파업이나 전송방식 변경이 산업계와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의 여파는 메가톤급이다. 방송위원회와 정통부가 지난달 해외실태 공동조사단을 파견했으나, 양 진영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끝나 전망을 어둡게 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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