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에서는 '비위를 저지른 사람이 누구냐'고만 묻는다. 과거와 단절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데, 방향을 잘못잡은 것 같다." 외교부 내부통신망에 해외공관의 부정부패에 대한 고해성사를 올렸던 외교관 H씨(일본 근무)는 19일 답답한 듯 말을 이어갔다.내부통신망에 고해성 글이 오르게 된 것은 20년 경력의 한 고참 외교관이 지난 10월 "변칙적 예산 사용으로 외교부가 따돌림을 받는다"는 자아비판을 올리면서부터. 비록 적은 액수라도 수십 년 동안 관행이 되어온 장부조작, 공금유용 등 비리에 대한 다른 외교관들의 반성이 이어졌다.
이들이 고백한 사례는 우리 사회의 엘리트이자 '신사(紳士) 공무원'이라는 외교관의 행위로 보기에는 안쓰러울 정도다. 개인 모임에 공금을 쓰거나, 출장기간을 부풀리고 회식 참석자를 조작해 돈을 챙겼다고 한다. 한 외교관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긴 하지만 출장지에 딸을 동반하는 등 우리가 보기에도 추잡하고 지저분한 얘기도 있다"고 고개를 떨궜다.
뒤늦게야 외교부는 "앞으로 업무 혁신을 하겠다"고 한다. "회계 시스템을 더욱 투명하게 하겠다"고도 한다. 그러나 일선 외교관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한 외교관은 "가라(가짜) 영수증을 만드는 게 비단 우리 뿐이겠느냐"라며 "예산을 적당히 운용해 (돈을) 해먹게 할 여지가 있게 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외교관의 도덕적 해이가 아닐까. 법인카드를 가지고 서로 돌아가며 밥 사먹는 행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한, '관행'이라는 이름의 부정부패는 계속될 것이다. 내부통신망의 글에 나온 관련자에 대해 조사도 해야겠지만 애초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안준현 정치부 기자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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