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강수정 옮김 에코리브르 발행·1만6,500원
미국 동부의 북쪽 끝 메인주는 전체 면적의 89%가 숲이다. 그래서 별명이 '소나무주'이다. '월든'의 작가 헨리 소로가오두막을 짓고 콩밭을 일구며 살았던 콩코드 숲도 메인주에 있다.
미국 생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버몬트주립대 교수)는 소로의 후예다. 고향인 메인주의 숲 속,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집에 살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글을 쓰고 논문을 발표한다. 매우 뛰어난 학자이지만 숲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는 그를 버몬트주립대가 간신히 모시는 데 성공했다. 통나무집에서 자주 불러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대신 학생들이 숲으로 가서 수업을 듣는다.
'동물들의 겨울나기'는 과학자의 눈과 시인의 감성으로 씌어진 자연 수필집이다. 메인주 숲 속 동물들의 겨울나기를 살피는 그의 눈길은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넘친다. 그는 혹한을 견디는 동물들의 지혜에 감탄하고, 그 비밀을 추적하느라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치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를 차근차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일단 그의 글 솜씨에 빨려 든다. 별난 재간을 부려서가 아니라 진지함과 솔직함,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은근 슬쩍 빛나는 유머 덕분이다. 그의 발길을 따라 겨울 숲으로 들어가면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겨우 5g, 동전 두닢 무게 밖에 안 되는 금관상모솔새가 변변한 먹이도 없고 기온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한겨울 숲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비결,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으로 날아가 겨울을 나고 돌아오는 나비의 본능, 눈 속 터널에 먹이를 보관하는 족제비의 지혜, 번데기 상태로 또는 성충 그대로 겨울을 나는 곤충들의 투쟁, 얼어붙은 호수 밑바닥에서 무려 6개월이나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버티는 늑대거북의 동면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는 하나하나가 놀랍고 감동적이다. 그는 특히 금관상모솔새에 커다란 애정을 바치며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에서 새삼 깨닫는 것은 생명을 품어 길러내는 겨울 숲의 아름다움이다. 지은이는 생명의 시계가 멈춰버린 듯한 겨울이 실은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뜨거운 몸짓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일러준다.
자연의 경이에 감탄해 마지않는 이 생물학자의 겨울나기 광경 또한 매우 서정적이다. 몹시 춥고 맑은 날, 솔잣새의 둥지를 찾아 숲을 헤매다가 별빛 아래 흰 눈을 밟으며 오두막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을 때,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와 코요테 울음소리에 문득 꿈결같은 그리움에 젖는 그의 모습에는 시인의 그림자가 겹친다.
이 책에는 그가 직접 그린 삽화가 여러 장 들어있다. '시튼동물기'의 시튼이 직접 동물 그림을 그렸듯 그도 자신이 관찰한 것들을 정성스런 세밀화로 남기고 있다.
아쉽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겨울 숲의 영웅들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서식 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인주의 울창한 숲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나라 숲에서도 동물들의 겨울나기 영웅담은 펼쳐지고 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숲으로 달려가 그들을 만나고 싶어진다.
/오미환기자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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