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털링, 페기 시그레이브 지음·김현구 옮김 옹기장이 발행·2만4,000원나중에 되찾을 생각에서 그들은 섬 전역의 동굴과 터널에 175개의 보물창고를 건설했다. 증거는 모두 인멸됐다. '터널―8'이라는 금괴로 가득한 거대한 방을 만든 175명의 기술자들은 약 65m 지하에서 송별회를 하던 중 터널 입구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 모두 생매장됐다. 야마시타 장군은 9월2일 미군에 항복했고, 이듬해 전범으로 사형 당하면서도 이 비밀을 지켰다.
그러나 미군은 야마시타의 운전 장교를 통해 숨겨진 금의 위치를 파악했다. 맥아더 장군은 2m 높이의 금괴 속을 거닐었고, 그것을 비밀정치자금으로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야마시타 골드'라고 이름 붙여진 이 금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비자금이 됐다.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도 사용하고 있다.
이 소설 같은 이야기는 워싱턴 포스트 기자 출신인 스털링 시그레이브와 그의 부인인 페기 시그레이브가 지난해 쓴 '야마시타 골드'(원제 Gold warriors)에 있는 이야기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실화다. 저자는 수천 시간에 걸친 관계자 인터뷰와 수천 건의 문서 조회를 거쳐 일본군의 아시아 약탈과 전후 일본과 미국 간의 금에 얽힌 검은 거래를 밝혀냈다.
'야마시타 골드'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에서도 별 5개를 받을 만큼 호평을 받았다. 여러 방송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다. 두 장의 CD에 담은 900메가 분량의 방대한 관련자료와 사진도 눈길을 끈다. 이유는 저자들이 비밀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들처럼 의문의 죽음을 당할 때에 대비해 세상에 증거를 남겨 놓자는 것. 홈페이지 www.yamashita―gold.com 등에도 올려놓았다. 책도 프랑스에서 먼저 낸 후 올 9월에야 미국에서냈다. 금의 검은 거래에 관여한 미국과 일본의 실력자들과 거대 기업, 은행들을 직접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 거의 배상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일본은 파산했다'며 배상을 포기했고, 적극적으로 변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상을 받지 못한 것은 강제징용노동자, 군대 위안부 등 선량한 피해자였을 뿐 미국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일본의 숨겨진 금은 미국이 구 소련의 위협을 막기 위해 막대한 달러를 뿌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금은 미국과 일본, 필리핀의 굵직한 현대사와 얽혀있다.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록히드 사건의 배후 인물인 고다마 요시오는 이 자금을 가지고 일본 자민당에 큰 도움을 주었다. 미국이 일본을 재건하기 위해 만든 각종 펀드자금의 출처도 이 금이다. 금본위제인 브레튼우즈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 중앙은행은 공식적으로 인정한 8,000톤의 금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었다. 닉슨이 중공과 외교를 트기 위해 막대한 양의 금을 원조했다. 레이건의 강한 달러 정책도 이 자금에서 나왔다.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와 부인인 이멜다의 사치스러운 생활도 이 금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마르코스의 하와이 망명은 미국에 남은 금을 넘기는 조건으로 이뤄졌다. 씨티은행, UBS 등 세계적 은행의 비밀 계좌에도 이 금이 상당량 보관돼 있다.
미국이 그토록 전쟁 피해자들을 무시하고 일본을 옹호한 이유가 이 책에서는 풀린다. 일본은 이미 50년대 전쟁 전의 경제수준을 회복했다. 과연 일본인의 근면성이 전부였을까. 야마시타 골드를 제외하고도 이미 약탈한 막대한 양의 재화가 일본 본토에 숨겨져 있었다고 이 책은 전한다.
놀라운 사실을 많이도 담고 있는 책이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필리핀에 숨겨진 '야마시타 골드' 이야기다. 금을 숨길 때 살아남은 필리핀인 벤 발모레즈가 가지고 있는 지도 사본과 보물사냥꾼들의 이야기, 90년에 인양된 옵텐노르트호에서 나온 금괴의 비밀, 전후 30년이나 필리핀 밀림에서 은둔한 일본군 오노다의 진짜 임무는 금괴를 지키는 것이었다는 등 영화 같은 사실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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