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앤문 그룹의 로비가 여야 3당에 모두 걸친 것으로 드러나면서 사건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썬앤문과 관련, 구속되거나 조사받은 인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 이광재, 여택수씨와 신상우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등이었다. 더욱이 문병욱 썬앤문 회장이 안씨를 통해 노무현 후보에게 감세 청탁을 요청했다고 진술하면서 노 대통령의 직접 개입 의혹마저 제기됐다. 이것은 500억원대의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의 충격을 상쇄하고도 남는, 여권으로서는 치명적인 '결정타'일 수 있다.문제는 야당도 이 사건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김성래 전 썬앤문 부회장은 "지난해 대선전 문 회장은 여당을, 나는 한나라당을 맡아 로비를 했다"는 요지의 탄원서를 지난 9월 법원에 제출했다.
약력에 구 민자당 금산지구당위원장 역임 사실을 밝힐 만큼 현 야권과 교분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진 김씨는 탄원서에서 "지난해 한 정치자금 모금행사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부인 한인옥씨와 1시간여 면담했고 서청원 전 대표와는 호텔에서 함께 맥주를 마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씨측은 "김씨가 여러 사람 속에 섞여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만난 일은 없다"고 밝혔다. 지난 1월 강남 모 호텔에서 열린 김씨의 계몽사 회장 취임식에는 이 전 총재의 측근 중 한 명인 K의원 등 여러 정치인들이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으며, 검찰은 썬앤문의 돈을 받은 현역 의원 및 원외지구당 위원장 가운데 한나라당 인사들이 여럿 있다고 밝히고 있다. 문씨의 부탁으로 P의원이 손영래 전 국세청장에 감세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민주당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검찰수사결과 노 대통령의 청탁 사실이 밝혀진다면 야당은 일거에 상황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당사자인 손 전 청장이 노 대통령의 청탁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고, 검찰은 민주당 P의원과 또 다른 구 여권 실세의 청탁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었던 손 전 청장의 통화내역 조회에 대해 검찰은 "기한이 지나 조회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노 대통령의 청탁 사실이 미궁에 빠지고 야당측 혐의만 사실로 드러나면 이번 사건은 여야 무승부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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