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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말해요, 찬드라'<이란주 지음, 삶이보이는창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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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가 고른 책]'말해요, 찬드라'<이란주 지음, 삶이보이는창 발행>

입력
200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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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이었을 것이다. 학교 대강당에서 '파업전야'라는 영화를 보았다. 대강당 앞에는 영화 상영을 추진한 학생들과 영화 상영을 막으려는 전경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그날 영화를 보며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노동자들의 파업 이야기가 그렇게 감동적이었을까? 아니면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바깥에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손에는 각목을 들고 서 있을 친구들의 얼굴이 떠올라서였을까?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어떻게 교문 앞에 버티고 있는 전경 대열을 뚫고 집에 갔는지, 그 후 '파업전야'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누군가와 이야기해본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어렸을 때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다가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 절망에 대해 눈물 짓는 능력은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에 그었던 밑줄. 하지만 독서하는 순간의 문제의식은 단지 그것으로 '향유'하고 이내 잊어버렸다. 그런데 모두들 나처럼 나이 들지는 않는 모양이다. 지난 5월 출간된 한 권의 책 '말해요, 찬드라'를 보면서 그걸 알았다.

'말해요, 찬드라'는 '부천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몸 담고 있는 이란주씨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표지엔 무척 순해 보이는 여자의 사진이 한 장 실려 있는데, 그녀의 이름이 찬드라이다. 1993년 '행색이 초라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에 신고를 당한 뒤 1급 행려병자로 분류돼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살아야 했던 네팔 여자. 이 책엔 그녀와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끝없이 가슴 답답한 사연들이 실려있다.

저자는 그들의 아픔을 과장하지 않았고, 양심 없는 한국인들의 몰염치한 노릇에 핏대를 올리지도 않았다.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특별히 배려하자는 요구 같은 것은 더더욱 없다. 다만 우리가 같이 살아가는 사회가 좀 '상식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단지 우리가 같이 살아가야 할 그들이 '조금 다르지만 같은 이웃들'이라는 것, '맞으면 아프고 슬프면 눈물이 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길 바란다고 말한다.

그리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메시지를 들고 나온 이 책이 나에게는 아주 특별해 보였다. '적선'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하는 사람들에게,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쿨'한 삶의 한 조건인 듯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눈치코치 없이 '그래도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책으로.

/원미선·이레출판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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