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연말 분위기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썰렁하다.세계 최대 명절이자 쇼핑 황금기인 크리스마스 경기가 기대치를 밑돌아 상인들의 한숨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경제가 오랜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분석에도 불구, 소비자들은 좀처럼 주머니를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최근 민간 경제연구소인 컨퍼런스 보드의 조사 결과를 인용, "올해 미국의 가구당 크리스마스 선물 비용은 455달러로 지난해의 483달러보다 줄어들 전망"이라고 전했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연말은 소매업자들이 연간 수익의 절반 이상을 올리는 큰 대목이지만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세계 최대 할인점인 미국의 월마트도 12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고객 수가 기대만큼 많지 않아 매출이 '낮은 수준의 전망치'에 부합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11월 미국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0.9% 증가한 3,224억 달러를 기록한데다 다우존스 지수가 1만선을 넘나드는 등 경기 회복 징조가 뚜렷한 데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불경기' 속에 머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비자의 발을 집에 묶어 놓는 북동부 일대의 잦은 폭설과 강풍도 매출에 타격을 줄 전망이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폭설과의 전쟁 준비를 끝마친 만큼 주말에는 시내로 나와 연극과 영화, 쇼핑을 즐기라"고 주문했지만 반응은 별로 신통치 않다. 이에 따라 콜과 시어스 등 주요 소매점과 백화점은 일제히 세일기간을 앞당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시어스 관계자는 "10∼30% 정도 할인해주는 명절 후 세일(Day-After-Holiday)에 소비자들이 대거 몰려들 건 분명하다"며 "그러나 고용 사정이 확실하게 개선되지 않는 한 소비심리 회복을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EU 12개국도 3분기 0.4%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지만 연말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프랑스는 크리스마스 매출이 지난해보다 21%나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상황이 더 어렵다. 프랑스의 1인 당 연말 예상 지출 규모는 565유로로 아일랜드(1,066유로·24%감소)의 절반 수준이다.
또 한 조사에 따르면 '소비주도층'인 프랑스 여성의 70%는 "아직은 경기침체기"라고 답하는 등 내년도 경제 여건이나 소비전망에 대해 여전히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여성의 31%는 "크리스마스를 넘기고 내년 초 세일 기간에 돈을 쓸 작정"이라고 말할 정도로 절약에 익숙해 있다. 프랑스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 평면 TV와 카메라 폰 등을 사고 싶은 욕심은 똑같지만 실제로는 옷과 책, 화장품 등 반드시 필요한 물건만 구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독일도 최근 연금과 주택 보조금, 교통비 지원 등 정부 보조금이 대폭 삭감됨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가 크게 위축됐다. 독일 소매업계는 올해 크리스마스 매출이 지난해 수준만 유지해도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영국은 품목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젊은 층을 겨냥한 패션 업체들은 매출 신장을 자랑하는 반면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잘 팔렸던 화장품과 향수는 공급과잉으로 고전하고 있다.
DVD플레이어와 디지털 라디오, MP3 플레이어도 강세다. 이중 디지털 라디오는 크리스마스 선물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물론 대부분의 나라에서 우울한 표정의 오프라인 소매업체와 달리 온라인 업체들은 높은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이종수기자 j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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