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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국방을 망치는 무리들

입력
2003.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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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는 적기(敵機)를 향해 발사한 대공포가 목표물을 맞히지 못하고 번번이 빗나갔다고 상상해 보라. 웬만한 적의 탄환쯤에는 충분히 버텨내리라고 여겼던 장갑차가 하찮은 적탄에 뚫려 기능을 상실했다고 가정해 보라. 이 얼마나 황당하고 끔찍한 일이겠는가. 이런 상황이라면 전투는 하나 마나일 테고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참패로 나타나지 않겠는가.군납과 무기도입에 부정이 개입됐다는 것은 곧 군 전투력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런 부패한 군대가 전투에서 이긴 사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군을 망하게 하는 것은 총칼을 든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부정부패다. 부패에 찌든 군대가 외적의 침입을 초전에 박살 내고 국민을 안전하게 지킬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다. 적에게 승리를 진상하는 군납비리야말로 일벌백계로 엄하게 다루어야 할 범죄행위다.

최근 경찰청의 수사로 군 무기도입 등을 둘러싼 군납비리가 도마에 올랐다. 마치 줄기를 당기자 고구마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듯 비리가 주렁주렁 달려 나오고 있다. 대상도 육군만이 아니다. 악취는 해·공군 등 전군에 걸쳐 있다. 대부분 DJ정권 하에서의 일이다. 한 마디로 요직을 독점한 특정지역 출신들이 '끼리끼리' 해 먹은 범죄다. '인사가 만사'라는 경구는 역시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육군참모총장과 국방장관을 차례로 지낸 사람이 부하진급을 미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역시 국방장관과 국가정보원장, 국회국방위원장을 지낸 현역의원이 무기납품업자로부터 수 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의 소환을 받고도 뭉개고 있다. 정치자금이라고 비껴 갈 방책도 없는 모양이다.

정말 추하고 창피하다. 이런 사람들을 내 고향 사람이라고 국방장관에, 또 참모총장에 기용한 인사권자는 국민에게 석고대죄해야 할 것이다.

이번 군납비리의 단초는 국방품질관리소장을 지낸 예비역 육군소장의 폭식증(暴食症)에서 비롯됐다. 이 사람은 모든 군수품의 품질인증 업무를 기화로 남들은 들킬까 봐 기피하는 수표까지도 마구 받아 챙겼다.

오죽했으면 탐욕스런 그의 축재행위에 변호인도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경찰의 수사결과 이 사람의 계좌엔 출처가 명확치 않은 27억원이란 거액이 입금됐고 남의 명의로 여러 차례 아파트 등 부동산도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DJ정부 출범후인 1998년 12월 현역 소장으로 국방부 획득정책관이 됐다. 이 자리는 각종 무기를 구입하는 것이 주업무다. 이 업무에 종사한 4년 여 동안 그는 군납업자로부터 23차례에 걸쳐 1억3,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주 경찰에 구속됐다. 속내와는 달리 군내에서 비교적 청렴하다는 평을 받았다는 그의 수뢰액이 얼마로 늘어날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게걸스레 해먹을 때까지 기무·헌병·감찰·군검찰 등 내부 감시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은 점이다. 이 사람은 무기납품에서만 돈을 챙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막강한 고교동창인맥을 업고 한 때는 군 실세 3인 방이니, 5인 방이니 하면서 인사에 까지 개입했다고 한다.

기무, 헌병이 아니라 어떤 감시조직이 이 사람의 비리에 손을 댈 수 있었겠는가. 군 당국의 비협조 속에 경찰이 거둔 수사 개가는 그래서 칭찬 받아 마땅하다. 군의 생명은 추상 같은 군율이다. 일사불란해야 할 군이 사조직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 조직은 이미 군대가 아니다. YS정권은 군사정권의 산실이었던 군내 사조직을 척결했다.

이른바 '하나회' 멤버 가운데는 버리기 아까운 사람도 많았다. 그럼에도 잘랐다.주로 자신들과 동향이었지만 읍참마속의 조치엔 예외가 없었다. 군내 사조직 척결이 평가 받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긴 공간을 내 고향 사람으로 채우다가 군과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고는 강병(强兵)을 만들 수 없다. 정부의 군납비리 척결 의지를 지켜보고자 한다.

노 진 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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