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9일 안전보장회의와 각의를 열어 미국으로부터의 미사일방어(MD) 시스템 도입을 정식 결정할 예정이다. 미국과 일본의 MD 협력과 동시 실전배치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일본을 대서양의 영국에 비견되는 '태평양 군사 파트너'로 삼으려는 미국의 전략이 더욱 선명해졌다.서두르는 부시
일본의 MD 도입 가속화는 미국 본토와 동맹국의 방위를 일체화시킨 '글로벌 MD망'을 구축하려는 조지 W 부시 정권의 전략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시 정권은 2년 전 9·11 동시다발 테러 사건을 계기로 북한 등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에의 대책을 최우선과제로 격상시키면서 MD를 국방정책의 기둥으로 확정했다.
미국은 우선 2004∼2005년 지상발사요격미사일 등을 배치하고 궁극적으로는 지구 규모의 MD망을 완성할 계획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6일 '탄도미사일방위의 국가정책에 관한 국가안전보장 대통령령'에 서명했다.
당초 기밀로 돼 있었으나 올해 5월 미일 정상회담 때 일본측에 설명하면서 대부분의 내용이 공개됐다.
'나선형 방식'으로 불리는 새로운 MD 정책이 담긴 대통령령은 "최종적인 시스템의 전모는 미리 결정하지 않는다. 먼저 능력의 초기단계에서 배치하고 위협의 변화나 기술혁신의 성과를 반영해가며 서서히 발전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개발도상에 있더라도 배치를 단행하고 MD의 규모와 내용, 배치지역을 단계적으로 조정해나간다는 발상으로 무엇보다 배치시기를 앞당기고 기간을 단축하는 데 역점을 둔 것이다.
대통령령은 또 글로벌MD망 구축을 위해 동맹국, 우호국에의 MD 배치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형태로 동맹국, 우호국의 기업 참가 기술공유를 막는 수출관리규제의 개정 등도 규정했다.
구체적으로는 미일의 공동기술연구 강화와 일본에의 MD 판매, 영국 조기경계 레이더 사용 및 영국 기업의 참가 허용, 이스라엘과의 공동개발, 미 보잉사와 러시아·폴란드 기업의 공동 연구, 덴마크와의 레이더 사용 교섭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일본의 방향전환
1993년 5월 북한의 노동미사일 발사실험을 계기로 미국과의 MD 공동연구를 시작한 일본 정부는 실제 개발 및 배치는 가능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한다는 입장이었다.
기술의 안정성에 대한 의문, 막대한 비용부담 등으로 일본 정부 내에 신중론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부터 북한 핵 위기가 다시 불거지고 미국이 새 MD 정책을 결정하자 미국이 독자 개발한 MD를 우선 도입키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난해 12월 미국을 방문 중이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방위청장관은 부시 대통령이 2004년부터 MD 조기 배치를 개시한다는 발표를 하기 전날 설명을 들은 뒤 "개발·배치를 시야에 넣고 검토해 나가겠다"고 처음으로 '배치'를 언급했다.
그 뒤 올해 5월 미일 정상회담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부시 대통령에게 "검토를 가속화하겠다"고 미국과 보조를 맞출 것을 약속했다.
일본 방위청은 일본을 향해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대기권 밖의 중간단계(미드 코스)에서 이지스함에 배치한 SM(스탠더드 미사일)3로 요격하고 요격에 실패한 탄도미사일을 착탄직전 단계(터미널 코스)에서 다시 지상배치 PAC(개량형 패트리어트)3로 요격하는 2단계 시스템을 상정하고 있다.
2004년부터 4년간 5,000억엔 정도를 투입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이지스함 4척에 모두 SM3를 탑재하고 PAC3 발사기지를 4곳에 마련하며 지상 배치형 레이더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방위청은 이와 함께 미국과 공동연구 중이던 차세대 요격미사일을 수년 내에 실용화하기 위해 공동 생산 단계로 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방위청은 개량형 SM3의 개발·양산을 서둘러 미국에서 구입할 SM3의 후계 요격미사일로 점차 교체해 나간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일본 내에는 MD도입이 단순히 일본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의 글로벌MD망의 일환으로 기능할 경우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본토나 일본 근해의 미군 함정을 공격하는 북한 미사일을 일본이 요격한다면 헌법 해석상 금지된 동맹국과의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또 미국과의 MD 공동생산을 위해 1967년 이래 견지해온 무기수출금지 원칙도 개정해나갈 방침이다.
1983년 이후 미국에 대한 무기기술 공여는 예외로 허용했지만 MD 공동생산은 일본이 핵심 부품을 생산해 미국에 제공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MD도입은 일본 방위정책의 골간을 규정하는 '방위계획의 대강(大綱)'의 개정은 물론이고 개헌론에도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는 중국이 일본의 MD도입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일본에게는 가장 큰 외교적 부담이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美 군수업체 "함박 웃음"
지난달 14일 일본을 방문했던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일본의 MD 도입방침에 대해 "일본은 최근 수년 세계의 안전보장에서 역할을 확대해왔다"면서 "이는 미일동맹의 바람직한 모습을 생각하며 21세기의 새로운 위협에 우리의 능력을 어떻게 변혁·개선해나갈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럼스펠드 방일 직후인 11월 말 도쿄(東京)에서 열린 제2차 미일 안전보장전략회의의 회의장 주변에는 미국과 일본의 MD 수혜 기업들이 부스를 설치해 세일에 열을 올렸다. MD 주계약자로 이지스 시스템과 PAC3 생산자인 록히드 마틴, 우주추적·정찰 시스템을 맡는 노스롭 그라만, SM3 생산을 담당하는 레이시온과 보잉 등이 모두 참가했다.
미국 방위산업체와 사실상의 관민 합동 개발로 MD를 조기 배치하고 미국 기업은 막대한 투자비용을 일본 판매로 회수토록 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속내가 드러나는 행사였다. 2001∼2002년 미국 내 정치 헌금액을 보아도 록히드 마틴이 236만 달러로 1위이고 그 중 60%가 공화당으로 들어갔다.
노스롭 그라만이 201만 달러로 2위, 레이시온이 108만 달러로 4위, 보잉이 38만 달러로 10위를 기록하는 등 이들은 막대한 정치헌금을 하면서 MD 조기 추진에 공을 들여왔다. 2년 간격으로 개량을 거듭해 나가야 하는 MD는 방위산업체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다.
이미 PAC3의 전신인 지대공 PAC2를 라이선스 생산해 방위청에 납품했던 미쓰비시(三菱)중공업도 PAC3와 SM3의 라이선스 생산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또 방위청이 MD의 지휘통제·통신 시스템은 국산으로 할 방침이어서 이 분야를 노리는 일본 기업들도 많다.
/도쿄=신윤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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