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의 가치가 연일 치솟고 있다. 유럽 통화당국의 용인 속에 유로화는 출범 5년 만에 달러화를 뛰어넘는 기축통화로 발돋움하려는 기세다. 17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유로당 달러 가치는 한때 1.2422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갈아치웠다. 출범 이후 처음으로 1.24달러대를 돌파한 유로화는 1.2404달러로 장을 마감했다. 1유로를 사기 위해서는 1.2달러도 넘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로화는 1999년 1월 출범 당시 달러당 1.17달러로 책정됐다가 이후 0.89달러까지 가치가 하락했다. 최저점에 비한다면 현재 유로화는 약 40%, 올 들어서만 약 18% 급등한 셈이다.유로화 강세가 이어지자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최근 달러화 대신 유로화로 원유를 결제하는 이른바 '오일 유로'를 채택할 뜻을 내비쳤다. 석유 대금을 달러로 받는 것보다 유로로 받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중국을 필두로 아시아·중동 국가들은 달러 추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염려해 국채 등 달러 표시 자산을 팔기 시작했다. 유로화는 국제적으로도 무역 결제통화로 이용되거나 자본시장에서 거래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로화 강세 현상은 미국의 재정과 무역 부문의, 이른바 '쌍둥이 적자'에 대한 시장의 우려와 유럽의 상대적 고금리를 노린 자금이 유럽으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 수출업체들은 수출 대금(주로 달러)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자 볼멘 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독일 협동조합은행연합회(BVR)는 17일 유로화가 더 강세를 보일 경우 수출에 주로 의존해온 유로권의 경제 회복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유럽 민간 경제연구소 연합인 유러피안 이코노믹 네트워크(EEN)도 이날 성명을 발표, "만약 유로화가 더 오른다면 ECB가 내년에 금리를 내리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인하를 촉구했다. 금리를 낮춰 유럽으로 유입되는 자금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유럽중앙은행(ECB)은 "아직 용인할 만한 수준"이라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오트마르 이싱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로화가 원래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자 10∼20년 정도의 장기적 평균가치로 거래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유로당 달러 가치가 1.35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ECB가 시장 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다.
미국이 사실상 강한 달러 정책을 포기했다는 것도 당분간 유로 강세를 점치게 한다.
경제가 한창 살아나는 상황에서 달러 약세가 수출업체에게 상당한 이득인 것은 물론 풀린 돈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도 아직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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