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른 기자회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정치권의 '막가파'식 싸움은 어려운 경기에 찌든 국민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대통령은 재신임, 사퇴, 정계은퇴 등 국민들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 극단적인 단어를 주저 없이 내뱉고 있고, 한나라당은 특검 관철을 위해 어이없는 단식투쟁에 이어 또 다시 대선자금 특검 관철을 위한 극한 투쟁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불법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이 넘으면 재신임을 묻지않고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10분의 1'이라는 계산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혼란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도덕적 우월성의 표현이 도덕불감증으로 비춰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러한 발언에 대해 논란이 일자 노 대통령은 특별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대통령으로서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조사에 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50분간 TV생방송으로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할 만큼 특별하고 긴급한 내용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10분의 1' 발언에 대한 해명에 불과했다는 것이 설득력 있는 지적이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대한 대응으로 한나라당 최 대표도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자금 수사가 편파적이어서 특검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어느 정도 밝혀진 것에 비해 노무현 후보 캠프는 대통령의 시인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인 규모조차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일리가 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 전에 특검 운운하여 검찰수사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또한 최 대표는 특별검사를 국회의장이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발상은 이해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몇 차례 구성된 특검의 구성원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고 국민들의 의혹을 상당히 해소해줬으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다만, 권력형비리 의혹 수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검찰청의 도입 주장은 이번 기회에 본격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독립적인 수사기구의 설치는 정치권의 수사 방해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바람직한 수단이 될 것이다.
정치권이 특별당비 명목으로 불법 대선자금을 모금했다는 것이 검찰수사 결과 새로이 밝혀지고 있다. 정치권은 특검을 요구하기에 앞서 검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검찰의 출석요구와 자료제출요구에 불응하는 것은 특검 도입 주장이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치권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더 이상 불필요한 기자회견을 통해 검찰수사에 압력을 가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 대표가 지구당 폐지를 비롯한 정치개혁 의지를 기자회견에서 다시 피력했고 노 대통령은 정치개혁 입법서한을 국회에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대선자금 정국을 탈피하고 총선 주도권을 위한 전략적 의도일지라도 정치개혁이 쟁점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끝없이 치닫는 여야 간 정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정치에서 어느 순간부터 대화의 타협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연이은 기자회견도 싸움의 영역에 국민들까지 끌어들여 대화의 노력 없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정략적 의도다. 이는 국민들의 정치불신과 혐오감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고 있다.
대화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포용의 자세로 나서야 한다. 대통령직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사퇴와 정계은퇴를 불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밝혔듯이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안정감'과 '신뢰감'을 주는 것이다. '남의 탓'을 견디지 못해 '흔들린다고' 국민을 버릴 수도 있다는 인식은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아니다.
윤 종 빈 명지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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