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종교계의 가장 큰 일은 불교계를 이끌어 온 큰 스님들이 잇달아 입적하고, 개신교 대형교회를 일군 1세대 목사들의 은퇴가 본격화한 것이었다.4월 서암(西庵) 스님이 입적했고 12월 들어서는 월하(月下), 서옹(西翁) 스님이 입적하는 등 조계종 종정을 지낸 3명의 스님이 열반했다. 참선 수행으로 명망이 높았던 청화, 덕명, 고송 스님도 세상을 떠났다. 태고종 종정을 지낸 덕암(德庵) 스님도 11월 입적했다.
이 스님들은 일제시대에 출가해 1950∼60년대 불교정화운동에 직, 간접적으로 간여했으며 선원과 총림의 방장, 조실 등으로 수행이 탁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 불교의 법맥을 이어온 간화선(看話禪)의 큰 스승들이 잇달아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대표적 대형교회의 하나인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가 정년을 5년 남겨두고 21일에 조기 은퇴한다.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는 10월 은퇴했다. 앞서 분당 갈보리교회 설립자인 박조준 목사가 1월, 광화문 종교교회 나원용 목사가 3월에 은퇴했다. 70년대 이후 개신교 성장을 이끈 '교회 부흥' 1세대 목사들의 은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불교와 개신교는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도자 그룹의 세대 교체가 이뤄지고 있다.
천주교는 올해 이용훈(수원교구) 유흥식(대전교구) 김희중(광주교구) 3명의 주교가 새로 탄생, 주교단의 절반 정도가 서품 5년차 미만의 젊은 주교들로 채워졌다. 한편 원불교 2인자인 교정원장에 여성인 이혜정 교무가 취임, 여성 차별이 아직도 남아있는 타 종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환경, 반전평화 등 국내외 각종 현안에 대한 종교계의 참여도 두드러졌다. 특히 수경 스님, 문규현 신부, 이희운 목사, 김경일 교무 등 4대 종단의 성직자들이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행한 '삼보일배'는 생명 존중의 소중함을 일깨운 역사였다.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평화를 위한 종교인들의 기원이 끊임없이 울려퍼졌으며, 한국군 파병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북한 핵 문제로 위기가 고조될 때는 각종 집회와 학술대회를 통해 남북 평화공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불교계에서는 2월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과거와 달리 폭력사태나 금권선거 시비 없이 평화스럽게 치러진 것이 특기할 만했다. 북한산 관통터널, 천성산 고속철도 통과를 둘러싼 정부와의 줄다리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위파사나 등 제3 수행법의 대두로 위기론이 제기된 간화선 수행체계 정립 작업이 시작됐다.
개신교계에서는 1월과 3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보수교단이 주도하는 친미적 기도회가 열린 이후 자성의 소리가 커지기도 했다. 신 기복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는 '청부론(淸富論)'이나 대형교회의 문어발식 확장을 연상시키는 지성전 체제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10월 분열된 교단을 하나로 합치기 위한 교회연합에 원칙적 합의를 봐 큰 성과를 거뒀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재위 25돌(은경축)을 맞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축하하면서 한 해를 보낸 천주교는 서울대교구 '시노드'(교구민 대토론회)가 열려 평신도의 교회 참여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교구장 교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에서 제2의 추기경이 탄생할 것이라는 기대가 무산된 것은 큰 아쉬움이었다.
서울 승가사 시주금의 뇌물 시비,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공금 유용, 음성 꽃동네 오웅진 신부의 후원금 전용 등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한 해이기도 했다. 내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주5일 근무제 대응책 마련에 부산했던 것도 2003년 종교계의 한 모습이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