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님 말 좀 해야겠습니다." 법정의 방청석에서 한 남자가 일어나 외쳤다. 그는 인기 드라마를 만든 유명 감독이었다. "하시죠. 피해자의 법정진술로서 허락하겠습니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말할 권리가 있다. 그의 딸이 남편에게 살해된 것이다.그는 먼저 변호사석에 있는 나를 가리키며 분노한 목소리로 저주했다. "당신, 변호사가 말이야, 살인범을 정신병자로 조작해 빼내려 하다니 그러면 안 돼. 저 살인범은 사건 일주일 전까지 멀쩡했단 말이야." 그가 쏜 분노의 화살이 나를 꿰뚫었다.
사건은 '닭살 부부'라고 할 만큼 금슬 좋은 부부에게서 발생했다. 둘 다 광고업계에서 능력 있는 인재였고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동반자였다. 부부만 있는 집에서 갑자기 아내가 죽었다. 출입문은 잠겨 있었고 외부인의 침입 흔적도 없었다. 범행동기도 없었다. 죽은 아내는 월급으로 시집을 돕기도 했다. 시누이들과도 친자매 처럼 지냈다. 끔찍이도 아내를 사랑하던 남편의 이해 못할 돌발적 살인이었다.
법원은 정신감정을 했다. 정신분열증으로 심신상실 상태라는 결과였다. 그러나 그의 증상을 눈치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철저히 정상인으로 위장한 그는 일에 바쁜 장인도 속인 것 같았다. 그걸 모르는 장인은 사위에게 소리쳤다. "야 임마 술수 쓰지 말고 차라리 죽어. 그게 네 죄 값을 치르는 거야."
순간 사위가 돌아보며 대답했다. "나도 목숨 구걸 안 해요. 안 한단 말이야." 분노와 오해 그리고 망상이 부딪치는 순간이었다. 사위는 힘있는 장인이 아내를 빼내 어딘가 숨겨놓았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변호사인 나까지 장인의 스파이라고 여겼다. 반면 장인은 정신병을 구실로 무죄판결을 받으려는 간교한 인간으로 오해하는 것이었다. 난 이렇게 말했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분노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수사기록을 보면 저 분은 처음에 처벌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위가 착한 사람이었다고 두둔까지 했던 분입니다. 그런 분이 지금 격분하는 건 분명 오해 때문입니다."
사실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추리극의 한 장면을 만들어 그에게 입력시켰을 것이다. 세상은 각자의 관점이 투영되는 스크린인지도 모른다. 재판장이 달래듯 그에게 말했다. "변호사가 아니라 법원이 정신감정을 한 겁니다. 병원도 의사도 재판장이 지정해서 했습니다. 동기가 모호할 땐 그게 법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는 순간 얼떨떨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단계 더 나아갔다. "사실을 조작하는 게 변호가 아닙니다. 정말 그런 의심이 조금이라도 발견된다면 재판장께서 극형에 처해 주십시오."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에게는 용서가 있었다. 그게 오해로 얼룩진 게 안타까웠다. 재판후 나는 그에게 온 마음을 다해 진실을 얘기했다. 자초지종을 듣던 그는 납득이 되자 미움을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 앞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녀석 꿈에도 한번 나타나질 않아요." 아버지의 안타까운 절규였다. 그처럼 솔직한 분노와 따뜻한 용서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엄상익 변호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